[중앙 시조 백일장 - 5월 수상작] 어머니·아버지는 늘 전력투구였다…눈부신 오월의 글들
장원

김은철
가지와 가지 사이 나무에 세 들어서
허공에 목숨 걸고 줄을 치는 호랑거미
배 밑엔 알주머니 달고
엄마라는 모정으로
구름과 지면 사이 한 사내가 밧줄 타고
땡볕과 북풍한설 온몸으로 받아낸다
어깨엔 가장의 완장
아버지란 이름으로
탯줄을 끊고 부터 시작된 외줄타기
세상엔 줄도 많아 씨줄과 날줄의 인연
세상에 제일 질긴 줄은
밥줄인가 하더라
◆김은철

차상
거실 한편에 모로 누운 청소기
전원을 눌렀는데 반응이 더디다
몸속에 티끌을 담고
기침을 토해낸다
바닥을 느릿느릿 닦으며 나아간다
보이는 곳 안 뵈는 곳 긴 세월 닦아내며
한집안 살핀 생애가
덧없이 낡아간다
차하
김은성
한때는 눈부심도 온몸으로 건너더니
적막에 익숙해져 내가 나를 비워낼 때
한 많은 서도창처럼 한 생애가 기운다
이달의 심사평
각 수의 시점 이동이 능숙하면서도 정연한 내적 질서를 갖춘 김은철의 ‘밥줄’을 장원으로 선했다. “모정”과 “완장”으로 지칭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지난한 삶을 “거미”와 “밧줄”로 환치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우리는 물질의 결핍 때문에 가난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찾기 어려울 때 더 큰 가난을 느끼게 되므로, 가난해지지 않으려고 전력투구하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다만 ‘줄’이라는 단어의 과잉과 종장 마지막 구, “밥줄인가 하더라”와 같은 고답적 표현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차상으로 올린
김은성의 ‘낙화’를 차하에 올린다. 유명한 시인의 ‘낙화’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지만 3장 6구 단수 안에 사람의 한 생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어서 믿음이 갔다. 초장의 청춘기와 중장의 중장년기를 거쳐 종장엔 완숙한 생의 어김없음을, 눈부심과 적막을 건너서 생의 종착점에 다다르게 되는 과정을 무리 없이 펼쳤다. 신인다운 패기나 참신성에는 못 미치지만 생을 관조하고 성찰하는 노련미가 돋보이는 글이다.
심사위원 강정숙(대표집필)·이태순
초대시조
윤정란
얘야 밥 먹자 소복소복 피어나는
어머니 목소리 봄볕으로 둘러놓고
이팝꽃 하얀 봉오리 고봉으로 웃는다
저 어지러운 하늘은 눈 감으면 그만인데
힘없이 주저앉아 일어설 수 없을 때
보리밥 고봉 한 그릇 이밥인 듯 나눠 먹자
◆윤정란

5월이다. 천지가 순한 초록으로 물들고 이팝과 아카시아, 찔레꽃이 하얗게 무더기 무더기 피고 논에선 모내기가 한창이다. 저 화창한 풍경의 이면에는 함께 겪어야 했던 모진 가난이 있었다. 누군들 쨍한 햇볕 아래서 어지럼증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얘야 밥 먹자’고 외치는 ‘어머니 목소리’, 가장 듣기 좋은 아련한 그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고, ‘소복소복’ 피어나는 ‘하얀 봉오리’가 꿈에서나 맛볼 수 있는 ‘고봉’의 ‘이밥’으로 치환되어 이때만 되면 시인들의 시적 영감을 자극하곤 한다.
또 저 찬란한 오월의 봄볕 속에는 폭압의 역사적 서사가 들어 있어 이때가 되면 가슴앓이를 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그래서 ‘저 어지러운 하늘은 눈 감으면 그만인데’ ‘어머니 목소리 봄볕으로 둘러놓고’ ‘보리밥’이라도 ‘고봉 한 그릇 이밥인 듯 나눠 먹자’는 시인의 목소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상처를 치유하는 힘은 가족에서 나오며 원초적인 힘의 원천인 어머니를 통해 우리는 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완전한 회복은 어렵더라도 조금이나마 보듬고 치유할 수 있을 것 같은 서정의 깊이를 시인은 ‘밥’이라는 생리와 현상을 몸으로 체득하며 우리가 추구하고 실현해야 할 ‘시적인 것’의 영역을 확장하고 심화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시조시인 손영희
◆응모 안내
매달 18일까지 중앙 시조 e메일([email protected]) 또는 우편(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48-6 중앙일보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으로 접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등단하지 않은 분이어야 하며 3편 이상, 5편 이하로 응모할 수 있습니다. 02-751-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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