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인사이드 아트] 사회 변화 촉구하는 행동주의 미술

![올라퍼 엘리아슨, ‘얼음 시계(Ice Watch)’, 2014/2018 [사진 올라퍼 엘리아슨 스튜디오]](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5/26/13346c2a-6cf7-4c38-8e0a-be4aa4103f1a.jpg)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루앙루파는 사회 공동체와 집단 참여를 예술로 연결해 온 대표적인 콜렉티브다. 이들은 2022년 카셀 도큐멘타 15의 예술감독을 맡아, 인도네시아 전통의 ‘곡식 창고(lumbung)’ 개념을 바탕으로 협업과 자원 공유, 재분배의 새로운 예술 모델을 제안했다. 전시장에는 작가와 활동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한 토론, 영상, 아카이브, 퍼포먼스, 설치 작업이 뒤섞이며, 예술을 결과물이 아닌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으로 재정의했다.
2020년 팬데믹 이후 초국가적 연대에 기반한 행동주의는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기후위기와 같은 지구적인 재앙은 작가들의 예술관과 가치 체계에 깊은 변화를 불러왔다. 전 세계 800여 개 갤러리와 미술기관이 참여하고 있는 ‘갤러리 기후 연합(GCC)’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대표적 국제 네트워크로, 2030년까지 미술계의 탄소 배출을 절반 이상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작가의 실천 매뉴얼(Artist Toolkit)’을 배포하며, 구체적 실천 지침을 공유 중이다.
이 취지에 동참하는 작가들은 티노 세갈처럼 항공 여행을 기피하거나, 게리 흄처럼 자신의 작품을 오직 육로나 해상으로만 운송하도록 제한하며 탄소발자국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올라퍼 엘리아슨은 엔지니어 프레데릭 오테슨과 함께 ‘리틀 선(Little Sun)’을 공동 설립해, 전기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 태양광 조명과 휴대전화 충전기를 보급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는 또한 지질학자와 협력하여 북극의 거대한 빙하 블록의 설치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시민들이 기후위기의 현실을 직접 체험하도록 유도했다.
최근에는 인종차별이나 기후위기, 정치·사회적 불평등에 이어서 문화적 다양성, 치유와 돌봄의 사회적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그레고리 쇼레트(Gregory Sholette)는 『The Art of Activism and the Activism of Art(행동주의 미술과 미술의 행동주의)』(2022)라는 책에서 예술을 단순한 상품이나 감상을 위한 대상이 아니라, 사회와 적극적인 관계를 맺고 참여하는 실천적 행위로 정의한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밖에서 벌어지는 시위, 퍼포먼스, 워크숍, 커뮤니티 프로젝트 같은 ‘보이지 않는 실천 공동체’를 통해 예술의 본래 기능이 회복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국내에서도 사회적 현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행동주의 작가들이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다. ‘리슨투더시티’는 미술·디자인·건축·영화·인문학·도시계획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집단으로, 과도한 도시 개발과 환경 파괴, 이주민과 장애인을 둘러싼 정책 문제에 개입하며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대안을 모색한다. 시각연구밴드 ‘이끼바위쿠르르’는 전쟁과 식민주의의 상흔에서부터 자연현상이나 지역 생태계의 문제를 탐구하고, ‘서울퀴어콜렉티브(SQC)’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소외된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빈민 노인, 성매매 여성의 삶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현대 예술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속에서 사회 비판적 기능을 점차 상실해 가고 있다. 그러나 행동주의 미술은 눈에 보이는 작품보다 사회적 관계, 실천, 연대를 중시한다. 이들은 예술이 시장에서 어떻게 유통되는지를 묻기보다, 사회적 맥락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응답한다. 물질적 결과나 정형화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주제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능동적으로 탐색한다. 이는 예술이 사회와 맺는 관계 방식의 전환을 의미하며 미술이 다시금 윤리적·사회적 가치 추구와 공동체 연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준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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