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째 계속된 '공중의 백악관' 교체 잡음…트럼프는 왜 조급?[정강현의 워싱턴 클라스]
2001년 9월 11일. 전대미문의 테러로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한 직후,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급하게 탑승했다. 대통령을 겨냥한 추가 테러 가능성을 우려해 목적지를 공개하지 않은 채 약 9시간 동안 비행했다. 비행 중엔 암호화된 통신시스템을 이용해 국가안보회의(NSC)와 지속적으로 교신했고, 전시 상황에 준하는 국가 대응 체계를 에어포스원 안에서 실시간으로 가동했다. 이날 에어포스원을 활용한 위기 대응은 ‘공중의 백악관’으로 불리는 미 대통령 전용기의 위상을 입증했지만, 역설적으로 비상사태와 관련해 한층 더 고도화된 전용기로 교체할 필요성도 함께 제기됐다.
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은 새 전용기를 도입하기 위한 계획에 착수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25년째. 신형 에어포스원 도입은 여전히 요원하다. 현재 보잉사가 제작 중이지만 공급망 문제 등으로 지난해 한 차례 일정이 미뤄졌고, 2029년에야 납품이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2기 임기 내에 새 전용기를 타야 한다”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급기야 카타르로부터 ‘공짜’ 항공기를 넘겨받게 된 배경이다. 뇌물 논란이 커졌지만, 미 국방부는 지난 22일 카타르에서 4억 달러(약 5470억원) 상당의 보잉 747-8 항공기를 무상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해당 항공기는 대통령 전용기로 활용되며 보안 조치를 비롯한 필요한 기능을 추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에어포스원은 ‘공중의 백악관’이란 별칭에서 알 수 있듯, 그 자체로 전자전 교란 시설과 미사일방어체계를 갖춘 막강한 보안시설이다. NSC와 직통 연결되는 회의실과 응급 수술이 가능한 의료시설, 85대에 달하는 보안 통신기기 등이 백악관 집무실과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돕는다.
현재는 보잉 747-200B 기종을 개조한 VC-25A 항공기 두 대가 전용기로 쓰인다. 약 35년간 운행해 노후한데, 부품 수급 등 관리상 어려움으로 그간 꾸준히 교체 논의가 있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도 논의가 이어지다 2015년 보잉을 새 전용기 제조사로 선정했다. 트럼프 1기 때인 2018년 7월, 보잉은 39억 달러 고정 가격에 2024년까지 신형 2대를 납품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터지면서 제작 일정이 지연되고, 협력 업체들도 줄도산하면서 사실상 작업이 ‘올스톱’ 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작업이 재개됐지만, 공급망 문제에 보안 인력 부족이 겹치면서 또다시 진행 속도가 느려졌다. 보잉의 품질관리 문제로 항공기 프레임에서 균열이 발견돼 작업이 일시 중단되는 일도 있었다.
현재 제조 중인 새 에어포스원은 트럼프 2기 임기 내에 납품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카타르 정부에 항공기 기증 의향을 먼저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발적 선물이 아닌 강요된 선물이었던 셈이다.
일각에선 강대국의 ‘상징성’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트럼프 특유의 과시욕에서 비롯된 조급한 결정이란 지적도 나온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가진 에어포스원은 낡고 덜 인상적”이라며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보다 못하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트럼프는 측근들에게 “인상적인 전용기가 필요하다”면서 카타르로부터 무상으로 인수한 항공기를 금과 마호가니 등 고급 목재로 꾸며진 자신의 개인 전용기(트럼프 포스 원)의 디자인을 본떠 개조하겠단 의지를 밝힌 것으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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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 항공기가 촉발한 윤리·법적 논란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부에 카타르의 선물을 새 에어포스원으로 개조하는 작업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각종 논란과 비판이 제기되면서 해당 작업이 무난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란 지적이 많다.
우선 뇌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미 헌법은 대통령이 의회의 동의 없이 외국 정부로부터 선물을 받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리처드 브리폴트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는 “헌법의 사유수익 금지조항을 어긴 전형적인 사례”라며 “다른 국가들이 유사한 선물을 통해 대통령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예 민주당은 “미 역사상 외국 정부로부터 받은 가장 큰 뇌물”(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이라며 범죄 행위라고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미 의회가 조사에 착수하거나 민간단체나 법학자 그룹 등에서 위헌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더 시급한 과제는 보안과 비용이다. 이 항공기는 ‘하늘의 궁전’으로 불릴 정도로 내부가 화려하지만, 미 대통령이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할 수 있는 보안시설이 전무하다. 전자 감청과 방첩, 미사일방어체계 등을 갖추려면 결국 내부를 완전히 해체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프랭크 켄달 전 미 공군성 장관에 따르면 핵폭발 이후 방사능 영향 차단이나 미사일방어, 공중급유 기능 등 에어포스원에 요구되는 높은 보안 기준을 충족하려면 개조에만 총 20억 달러(약 2조 7000억원)가 들어갈 것으로 예측된다. 항공기를 공짜로 받더라도 네 배 넘는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는 셈이다. 게다가 전면적인 해체 작업을 한다면 트럼프 임기 내에 개조가 완료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트럼프 1기 당시 미 국가방첩안보센터(NCSC) 국장을 지낸 윌리엄 에바니나는 소셜미디어에 “기존 항공기에서 스파이 장비를 탐지하고 전체를 분해해 평가하는 것만 해도 수년이 걸린다”고 적었다. 트럼프의 요구대로 임기 내에 쓰기 위해 급하게 개조하면, 자칫 불완전한 보안시설로 미 대통령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단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강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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