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공약도 별 차이 없는데 왜 그리 싸웠나 [김성탁의 시선]


하지만 상황이 그렇다고 해도 차기 5년의 국정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대선 후보들이 시대를 관통하는 담론조차 부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역대 대선을 돌아보면 2002년 16대 대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충청권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으로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담론을 쏘아 올렸다.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연평균 7% 경제성장 달성과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 강국을 만들겠다며 ‘7·4·7 공약’을 내놓고 다른 후보들과 공방전을 벌였다. 장밋빛 공약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사실상 폐기되다시피 했지만, 나름의 경제론을 대선 화두로 던진 사례였다.
18대 대선 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수 후보로서 파격적인 ‘경제민주화’ 공약을 선보였다.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함께 성장 위주에서 벗어난 경제 패러다임 경쟁을 벌였다.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는 지적을 받긴 했지만, 19대 대선 때 문 전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을 제시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이재명 후보를 간발의 차이로 이긴 지난 20대 대선에선 ‘공정’이 시대적 화두로 떠올랐었다.
이와 달리 이번 대선에선 두 차례 진행된 TV 토론만 보더라도 실망스러운 모습이 많다. 대선 후보들이 경쟁하는 장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알맹이가 없었다. 비상계엄이나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각 후보의 입장은 이미 유권자들이 파악하고 있는 내용이다. 이를 뛰어넘어 정책과 비전을 놓고 겨뤄보라고 마련해준 무대에서 각 후보는 네거티브 비방전에 열을 올렸다.
시대 담론 안 보이고 비방전 가열
국민 편 갈라 기득권 유지 행태
개헌과 선거제 개편으로 견제를
국민 편 갈라 기득권 유지 행태
개헌과 선거제 개편으로 견제를
2차 TV토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각각 과거 부정선거 동조와 의혹 제기 발언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더니 이후 거짓 해명을 했다며 상대방을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했다. 답변 거부 등이 반복되면서 대선 후보 토론의 격마저 떨어질 지경이었다.
이번 대선에서 내놓은 주요 정당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면 차이도 별로 없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대책에서 이재명 후보와 김문수 후보는 각론이 다를 뿐 대출 경감 등 방향이 비슷하다. 이 후보는 코로나 정책 자금 대출에 대한 채무 조정부터 탕감까지 종합 방안 마련과 비상계엄으로 인한 피해 자영업자 지원 방안 마련을 공약했다. 김 후보는 매출액 급감 자영업자에게 특별 융자 제공과 소상공인 새 출발 희망 프로젝트 지원금 증액 등을 공약했다. 재정이 투입돼야 하는 게 공통적이다.
노후 빈곤 해소를 위한 국민연금 개혁안과 관련해서도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까지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실행 방안이 뚜렷하지 않다. 수조 원에서 수백조 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되는 재원 마련 방안도 없는 실정이다. 이재명 후보와 김 후보의 공약에 요양병원 간병비 건강보험 적용이 포함됐지만, 재정 확보 방안을 봐야 실현 가능성 여부를 따져볼 수 있을 전망이다.
분권형 개헌을 약속하는 등 정치 분야 공약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거대 정당들은 왜 그토록 죽기 살기로 싸워온 것일까. 노란봉투법 등 노선이 다른 법률안 등에 대한 시각차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는 국민을 내 편과 남의 편으로 갈라놓아야 자신들의 정치적 기득권 유지에 수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정치권은 약화했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지역감정을 편 가르기의 불쏘시개로 활용해왔다. 또 이념적 성향에서 나아가 세대와 성별, 계층으로까지 유권자를 갈라치기 하며 갈등을 증폭시켜왔다.
이번 대선의 승자가 어느 쪽이든 내년에 지방선거가 있고 3년 후 23대 총선이 치러진다. 비상계엄과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이라는 질곡을 이번 대선을 통해 넘어선 이후 유권자들은 새로운 과제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대립이 일상화한 정치를 바꾸려면 분권형 개헌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하고, 거대 양당이 아니라 다양한 정치 세력이 등장하는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갈등의 정치를 멈춰 세우려면 주권자인 국민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김성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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