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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혜의 시선] 윈터 이즈 커밍

유지혜 외교안보부장
몇년 전 한 KBO 리그 경기. 9회말 원 아웃, 스코어는 동점에 주자 2, 3루였다. 타자가 공을 외야로 띄우기만 하면 수비가 잡아도 희생 플라이로 한 점이 나고, 잡지 못하면 주자가 모두 홈으로 들어와 어쨌든 홈 팀이 이기는 구도. 내가 응원하는 팀은 수비 중이었다. 투수와 타자는 한동안 신경전을 벌였지만, 정타로 쳐낸 공은 결국 외야로 떴다. 게임 끝이었다. 그런데 중견수가 갑자기 공을 쫓아 내달리더니 담장에 몸을 부딪치는 허슬 플레이로 기어이 공을 잡아냈다. 어차피 지는 경기,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주한미군 감축설도 나오는데
대선서 안일한 안보관만 표출
혹독한 ‘안보의 겨울’ 대비해야

그날 경기는 3연전 중 첫 경기였다. 앞으로 두 게임을 더 붙어야 하는데, 맥없이 그냥 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가 보여준 건 ‘내일은 오늘과 다르다’는 투지 그 자체였다.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을 지켜보며 문득 당시 장면이 생각났다. 아무리 조기 대선의 특수성을 감안해도 이렇게까지 감동이 없는 선거는 처음이라서다.

더불어민주당을 보면 이미 정권을 잡은 듯하다. 이재명 후보가 선을 그으며 결국 철회하긴 했지만, 법조 경력이 없는 사람도 대법관으로 기용하도록 법을 바꾸겠다는 발상이 대표적이다. 국민의힘은 실탄도 없이 간헐적 급발진을 반복하는 느낌이다. 방식이 문제지, 많은 이가 공감하는 의료 개혁 문제에 갑자기 “하느님 다음으로 중요한 게 의사 선생님”이라며 무조건 사과한다는 김문수 후보는 무슨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더 걱정인 건 이번 대선만큼 외교·안보 이슈가 가볍게 다뤄진 적도 없다는 것이다. 지금 안보 환경이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는 점에서 위험한 모순이다. 한·미 정부가 곧바로 부인하기는 했지만, 정통한 미국 언론을 통해 미 국방부의 주한미군 감축 검토 소식이 나온 건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수차례 제기한 사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미국이 해외 주둔 미군에 ‘전략적 유연성’을 들이대려는 목적은 보다 효율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억지하는 것이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이 최근 “한국은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의 고정된 항공모함 같다. 주한미군은 북한 격퇴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고 한 건 이런 목적으로 주한미군을 운용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동시에 이는 일각의 주한미군 감축론에 선을 긋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 제어에 쓰지 않는다면 한국에 미군을 그렇게 많이 두는 실익이 뭔가’라는 의구심을 반박하는 것이라서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주한미군, 더 나아가 한·미 동맹의 역할이 일부 확장되는 건 불가피하다. 사실 이는 트럼프가 아닌 바이든 2기였어도 이어질 흐름이었다.

이는 당초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된 한·미·일 안보 협력의 ‘진화’ 방향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2023년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3국은 처음으로 “불법적 해상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하는 위험하고 공격적인 행동”의 주체를 중국으로 못박는 등 대중 견제의 성격을 명확히 했다. 함께 맞설 안보 과제의 순서를 봐도 북핵 위협보다 대만해협 등에서 중국의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대한 대응이 더 앞에 있다.

이 후보가 대중 외교 관련 “셰셰(謝謝, 고맙다)”를 거듭하는 건 그래서 우려스럽다. 그의 외교 책사인 위성락 민주당 의원 말대로 “주변국과 적대적 관계를 심화시킬 필요는 없지 않으냐”(23일 중앙선데이 인터뷰)는 정도의 취지라면 다행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

이 후보가 우리와 상관없다고 한 대만 문제와 관련, 한·미 정상 차원에서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처음으로 관련 입장을 공식화한 건 민주당 정부인 문재인 전 대통령 때였다는 점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2021년 5월 정상회담).

핵 공유나 핵무기 설계 기술 축적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김 후보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핵 무장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이렇게 쉽게 거론한다면, 미국이 뭣 하러 한국에 미군을 두고 확장억제를 제공하겠나.

앞서 언급한 경기에서 인상적인 건 몸을 던진 중견수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공을 잡자마자 3루에 있던 주자는 홈으로 전력 질주했다. 다 이긴 경기인데도 슬라이딩까지 하며 홈 플레이트를 터치했다. 상대의 투지에 역시 투지로 답한 것이었다.

안일함이 난무하는 이번 대선에서 이제라도 이런 치열함을 보고 싶다. 지금 밖에선 윈터 이즈 커밍, 혹독한 ‘안보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유지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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