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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의 세계경제전망] 일본 국채금리 뛰며 자금 이동 조짐…국채 시장 급랭 가능성

‘부채 포비아’에 흔들리는 안전자산 국채
하현옥 논설위원
글로벌 국채 시장이 녹아내리고 있다. 빚에 취한 정부가 쏟아내는 국채에 대한 투자자의 너그러움이 사라지면서다. 장기물을 중심으로 수요가 줄면서 채권값은 하락하고 금리는 치솟고 있다. 대표적인 안전 자산으로 여겨졌던 국채의 위기다.

조짐은 이미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관세 전쟁이 격화하며 지난달 초 벌어진 투매로 세계 금융 시장은 ‘국채 발작’을 겪었다. 미국에 상품 등을 수출해 무역흑자를 낸 국가가 미국 국채를 사들이며 낮은 국채 금리를 유지하는 ‘달러 리사이클링’ 구조가 관세 폭탄으로 인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미 국채 금리는 일제히 치솟고 달러 가치도 내려앉았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이 서둘러 상호관세 90일 유예 카드를 꺼내들었고, 시장도 안정을 찾는가 싶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1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 20·30년 국채 금리 5% 돌파
일본 장기국채 수익률도 최고치

감세안으로 재정적자 증가하며
국채 발행 늘 우려에 시장 발작

중앙은행 양적긴축에 수요 감소
커진 변동성, 시장 뇌관 될 수도

그러나 투자자의 인내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 21일 미국 20년물과 30년물 금리가 모두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5%를 돌파했다. 30년물 금리는 장중 한때 5.1%에 육박하며 2023년 11월 이후 1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트럼프가 대규모 감세안(메가 법안) 통과를 위해 공화당내 반대파에 대한 설득과 압박에 나선 데다, 이날 미 재무부가 진행한 국채 20년물 입찰에서 응찰률이 부진했던 탓이다.

흔들린 시장은 미국만이 아니다. 이날 일본 국채 시장도 요동쳤다. 일본 국채 30년물과 40년물 국채 금리가 최고치로 치솟았다. 장 중 한때 30년물 금리는 3.185%, 40년물 금리는 3.635%까지 뛰었다. 20년물 금리도 2000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2.575%까지 상승했다. 미국처럼 부진한 국채 입찰이 금리를 끌어올린 기폭제가 됐다. 전날(20일) 진행된 일본 재무성의 20년 만기 국채 입찰에서 평균 낙찰가와 최저 낙찰가 차이는 1987년 이후 38년 만에 가장 크게 벌어졌다. 최고 낙찰금리(연 2.54%)는 1999년 7월 이후 26년 만에 가장 높았다. 독일과 영국 등의 장기 국채 금리도 뛰었다.

채권 리스크 프리미엄 더 높이는 시장
로이터는 “장기 국채 금리 상승과 국채 입찰 부진은 투자자가 각국 정부에 던지는 명확한 메시지”라며 “최근의 불확실성 속에 몇십년간 돈을 빌리려면 더 많은 이자를 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취리히 보험 그룹의 수석 시장전략가인 가이 밀러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투자자 입장에선 부채가 계속 악화하고 성장 동력이 보다 취약한 세상이라면 채권을 보유하기 위해 요구하는 리스크 프리미엄이 더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글로벌 국채 시장의 발작을 초래한 건 ‘부채 포비아’다. 각국 정부가 추진하는 감세안은 투자자에게는 악몽처럼 여겨진다. 재정적자가 늘면서 국채 발행도 증가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국채 공급이 늘면 채권값은 하락하고 금리는 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의 이자와 원금을 제대로 상환하고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진다.

미국의 나랏빚은 마구 부풀고 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미 연방정부의 국가부채는 36조 2200억 달러(약 4경9451조원)다. 국채 발행액만 29조 달러(약 3경9588조원)에 이른다. 미 재무부는 지난달 기준 부채 유지에만 6840억 달러가 들어가며, 이는 2025 회계연도(2024년 10월~2025년 9월) 정부 지출의 16%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013년 100%를 넘은 뒤 지난해 123%를 기록했다.

재정 건전성은 나빠지고 있다. 미국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지난해 6.4%에서 올해 6.5%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감세안인 메가 법안은 이를 더 가속화할 전망이다. 미 의회 합동조세위원회(KCT)는 메가 법안 초안에 따라 감세를 시행하면 향후 10년간 연방 정부 재정 적자가 3조8000억 달러(약 5187조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시장이 공포에 질릴 만하다.

이런 우려 속에 지난 16일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한 단계 강등했다. 그 결과 미국은 3대 국제신용평가사(피치·S&P·무디스)에서 모두 ‘트리플A’ 등급을 잃었다.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창립자는 최근 “미국의 적자는 시장이 감당할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며 “향후 3년 내외로 미국은 중대한 고비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채권 시장 ‘큰손’ 중앙은행의 변심
일본에 대한 시장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36.7%에 이른다. 나랏빚이 어마어마한 가운데 일본은 올해에만 20조 엔(약 191조원)의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그런데 감세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소비세(10%) 감면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식료품에 8%의 경감 세율을 적용했는데, 이를 최대 0%로 인하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연간 5조 엔(약 47조원)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세는 일본 정부 세수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소비세 인하로 인한 세수 공백을 국채 발행으로 메워야 한다. 시장이 국채를 내던지며 경고장을 날리는 이유다.

차준홍 기자
재정 건전성이 상대적으로 나은 독일의 국채 금리도 늘어나는 빚 우려에 들썩였다. 지난 3월 독일 정부가 향후 10년간 인프라와 국방비에 1조 유로(약 1558조원)의 재정을 투입하는 헌법(기본법) 개정안을 논의하면서 2.4% 수준이던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가 2.9% 턱밑까지 치솟았다.

안전 자산인 국채의 안정성을 흔드는 게 ‘부채 포비아’만은 아니다. 거시경제적 우려에 더해 글로벌 국채 시장의 구조적 문제에도 이유가 있다. 국채 시장의 ‘큰손’을 자처하며 채권 가격을 든든하게 지지했던 각국 중앙은행이 매입을 줄인 탓이다.

차준홍 기자
신영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미 국채의 50.6%를 보유하고 있다. 국외보유분(32.9%) 중 일본(12.5%)과 영국(8.6%), 중국(8.5%)과 비교해도 월등하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 2020년 3월 Fed가 무제한 양적 완화(QE)에 나서며 국채 등 채권을 사들인 영향이다. 그러나 Fed의 미 국채 보유액은 줄고 있다. 3년 전부터는 Fed가 보유한 채권을 매각하거나 만기 후 재투자하지 않는 양적 축소(QT)를 시행하면서다. 이달 기준 Fed의 미 국채 보유액은 4조3125억 달러로 QT 시작 전인 2022년 5월(5조7694억 달러)보다 27% 줄었다.

헤지펀드 채권시장 장악, 변동성 커져
일본 국채 시장의 큰손은 일본은행(BOJ)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BOJ가 보유한 일본 국채는 약 576조 엔(약 5509조원) 규모다. 일본 총 국채 발행 잔액의 50%를 차지한다. 장기간의 QE 탓이다. 그러나 한동안 국채 시장의 ‘봉’이었던 BOJ가 국채 쇼핑을 자제하고 있다. BOJ는 지난해 8월부터 내년 8월까지 분기마다 4000억 엔(약 3조8250억원)씩 국채 매입을 축소해가고 있다. BOJ의 매수가 줄면서 시장에서는 일본 국채의 순공급이 늘어나고 있다.

차준홍 기자
금융전문지 배런스는 “중앙은행처럼 가격에 둔감한 투자자보다 헤지펀드와 뮤추얼 펀드처럼 가격에 더 민감한 투자자가 채권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서 국채의 가격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각종 경제지표나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이 출렁이는 것이다.

국채 금리 상승(국채 값 하락)은 글로벌 금융 시장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영향은 전방위적이다. 채권 금리 전반의 상승 압력이 높아지며 정부와 기업의 비용 부담은 늘어나게 된다. 기업 투자가 줄고 빚이 많은 기업은 무너질 수도 있다. 정부는 이자 비용이 늘면서 재정 악화가 가속화할 수 있다. 채권값이 하락하며 국채를 보유한 금융사의 부담도 커질 수 있다.

일 국채금리 상승, 캐리 트레이드 자극
향후 금융시장의 흐름을 좌우할 주요 변수로 꼽히는 건 일본 국채 금리의 흐름이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일본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 일본 생명보험사를 중심으로 한 일본계 자금이 일본 본국으로 환류하는 머니무브 가능성이 잠재한다”며 “일본 국채 금리 상승으로 미국 등 해외 채권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낮아지고 환율 헤지 등 비용 상승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일본은행 본부 전경. 로이터=연합뉴스
이를 뒷받침하듯 조지 사라벨로스 도이체방크 외환 분석가는 “최근 미국 국채 금리 상승과 일본 엔화 강세가 동시에 나타났다”며 “이는 미국 재정 위험의 가속화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신호로 미국 국채가 일본 국채와의 수요 경쟁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박 연구원은 “미국과 일본 국채 금리의 동반 상승세가 지속할 경우 일본의 미 국채 투자 등 대미 증권투자가 축소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일본 국채 금리가 오르고 그에 따른 일본으로의 자금 이동이 나타나면 엔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압력을 높이고, 글로벌 자금 흐름의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피델리티는 “일본 투자자 자금의 본국 환류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일본 국채 금리 급등은 전 세계 장기채권 시장에 전염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현옥([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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