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갈아타고, '돌려막기'하고…이자 얼마 빠져나가는지도 몰라" [월간중앙]
현장취재|빚이 생존 수단 된 자영업자… 가계부채 최전선 현장을 가다대출 이자도 못 갚아 폐업 고민, 누가 장사 시작한다면 나서서 말릴 판
가계부채에서 주택담보대출 비중 커, 부동산 정책 혼선도 소비에 영향
" 분명히 한두 달 전에 왔었는데… "
지난 5월 2일 오후 1시경, 서울 중구 충무로역 인근 거리에서 만난 50대 박모 씨의 말이다. 그는 카페를 이용하기 위해 지인들과 한 건물을 찾았지만, 멋쩍은 웃음과 함께 자리를 떠야 했다. 그가 불과 한두 달 전에 방문했던 카페는 소리 소문 없이 폐업 절차를 밟았다. 폐업한 카페 건물 앞 화분이 눈길을 끌었다. 주인 없이 방치된 화분에는 담배꽁초와 각종 쓰레기가 가득했다. 심지어 박씨와의 짧은 대화 와중에도 한 행인이 화분 위에 쓰레기를 한 움큼 더 얹고 지나갔다.
최근 충무로가 ‘레트로’ 감성을 찾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라는 말이 나오곤 했다. 을지로가 ‘힙지로’라는 별명을 얻은 것이 인근의 충무로까지 확장돼 ‘힙무로’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러나 소위 입소문을 탄 몇몇 가게를 제외하면 대부분 상황이 어렵다고 한다. 기존 상권의 자영업자들은 박씨가 방문하려 했던 카페와 같은 결말을 맞거나, 빚더미 속에서 근근이 버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가계부채 총액은 1983조4000억원에 이른다. 지난 한 해 동안 62조원가량 늘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몇 년째 90%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가계부채 부담에 시민들이 지갑 열기를 꺼릴수록 고심이 깊어지는 건 역시 자영업자들이다. 대출 상환 부담과 경기 침체가 겹치는 상황 속에서 외줄을 타고 있는 자영업자들을 만나봤다.
![가계부채는 늘어나는데 경기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졌다. [연합뉴스]](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5/27/fed94ce9-4971-4286-af58-5ba0ffb4f25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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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경기 침체 폭탄, 빚 내서 빚 갚는다
소씨의 고깃집도 계속 손해만 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물가가 자꾸 오르니까 비용이 점점 늘어나는데, 손님들은 줄고 있다”며 “가격을 올리는 것에도 한계가 있으니, 손해를 안고 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매출도줄고 있다. 소씨는 “가뜩이나 물가가 올라서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려고 하는데, 최근에 택시비도 올랐지 않나”라며, “원래는 손님들이 차 끊기는 시간까지 술을 마시다가 택시를 타고 갔다. 그런데 요즘은 택시비가 비싸니까, 다들 고기만 먹고 빨리 집에 간다”고 했다.
주류 판매가 수입원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술집, 고깃집들에는 남의 일 같던 택시비 인상까지 고민거리가 됐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전집을 운영하는 김모(40대·남) 씨도 하루하루가 막막하기만 하다. 그는 “날씨가 좋은 게 싫다”고 했다. 전집 특성상 비가 오는 날에만 손님들이 가게를 찾기 때문이다. 7000만원의 대출을 보유한 김씨는 “매출이 안 나오니까 매달 월세, 전기료 내고 대출 이자 갚으면 끝”이라며 한숨을내쉬었다. 인건비를 줄일 방도가 없으니 그나마 있던 직원도 내보내야 했다. 2025년 올해 최저시급은 1만30원, 1만원을 넘어가니 아르바이트생도 쓰기 어렵다. 그는 “비 오는 날에만 하루씩 사람을 쓴다. 평소에는 어머니와 둘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임대료에 재료비, 각종 관리비를 합치면 500만~600만원이 나가는데, 여기에 대출 이자까지 빠져나가니 남는 것이 없다”고 했다. 대출금 상환이 어려우니 다른 대출을 받아 대출금을 갚기도 하고,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대출을 ‘갈아타는’ 일도 있다. 그는 “요즘에는 얼마가 빠져나가야 하는지도 헷갈릴 때가 있다”며 “그저 굴러가기만 해도 감사할 텐데, 가게 열고 6년 동안 빚만 늘었다”고 푸념했다.
김씨처럼 악순환에 빠진 자영업자들이 많다. ‘장사가 잘되면 갚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초기 자금으로 받은 대출은 매출이 나오지 않으니 상환이 어렵고, ‘돌려막기’식으로 추가 대출을 받으면 이자 부담에서 헤어 나올 방법이 없다. 김씨는 “주변에 폐업 고민하는 사람 천지”라며 “혹시나 누가 장사 시작한다고 하면 나서서 말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4분기 말 자영업자들의 저축은행 연체율은 11.70%로 나타났다. 지난 10년 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자영업자들의 대출 상환 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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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공휴일만 되면 텅텅 빈다”
대학가에서 영업하는 경우 시험 기간, 방학 기간에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것도 공통된 증언이다. 소씨와 김씨의 식당 모두 대학가 상권에 위치해 있다보니, 인근 대학교 학생들이 자주 이용해야 수익이 나는 구조다.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 있는 기간에는 매출이 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소씨는 “학생들 숫자가 확실히 줄었다”며 “원래도 많지 않은데, 그런 기간에는 더 없다”고 말했다.
최근 가계부채 급증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주택 담보대출이다. 실제로 지난 4월 5대 은행(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의 가계대출이 5조원가량 증가했는데, 이 중 주택담보대출이 전월에 비해 3조7000억원 늘었다. 봄철 이사 수요와 금리 인하 기조가 겹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출 상환 능력이 떨어지면서 채무불이행 자영업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연합뉴스]](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5/27/aba85184-f603-4dee-ae54-c8a8f9ea7d62.jpg)
이씨는 “집값이 너무 오르는 것도 문제지만, 집값 올랐을 때 되파는 방법 말고 서민들이 돈 벌 방법이 뭐가 있나”라며 “사람들이 빚을 내 집을 사도 집값이 올라가고 있으면 마음이 여유로우니 지갑을 연다”고 말했다. 늘어난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선 “대출을 규제하는 것도 이해하는데, 자꾸 왔다 갔다 하니까 혼란스러워서 소비를 줄이는 것도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금 상황에서 가계부채 증가에 대해 단호한 조치가 없으면 불안정한 경제에 악영향이 늘어날 수 있다. 박철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부채 급증은 금융 안정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금융당국의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부채 증가 속도에 대해 언급했다.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가 빨라지는데,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회복이 어렵다”며 “경기가 활성화되는 시기에 접어들면 보통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는데, 코로나19를 겪은 뒤로 어려움이 계속 가중되다 보니 지금 상황에 이른 것”이라고 했다.
가계부채 증가와 내수 침체의 최전선에서 벼랑 끝으로 몰린 자영업자들을 위한 해법이 절실하지만, 국면을 타개할 방법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강 교수는 “자영업자들의 부채와 관련해 가장 전통적인 방법이 이자율 혜택이다. 정부가 지원해서 금리 혜택을 제공하고, 원금 상환 기간에 유예를 두는 방법 정도가 최선”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도 “금융권과의 논의가 필요하다 보니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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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수 활성화가 절실”
실제로 앞서 김씨가 언급한 대체공휴일 지정의 경우도 ‘내수 진작’이라는 명목으로 시행됐지만, 자영업자들이 체감하는 것과는 달랐다.
강 교수는 휴일이 지정되면 해외 여행객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이제는 사람들이 국내 관광은 왜 안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아직 여러 규제 때문에 국민이 원하는 방식의 관광 형태를 못 만들어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주도만 해도 공유 자동차, 에어비앤비 등에 대해 규제가 많은데, 사실 이런 것들이 다 비용 절감과 연결된다”며 “그러니 일본이나 동남아 국가들로 여행 가는 편이 더 저렴하다. 규제 완화가 이뤄지지 않으니, 국내 관광이 너무 비싸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동하 월간중앙 인턴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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