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세 언니도 호미들고 밭일"…100세 장수촌 하서마을 비결 [르포]

지난 26일 찾은 하서마을. 마을 뒤편으로는 대운산 자락이 길게 뻗어 있고, 맑은 남창천이 옆으로 흐른다. 국도변 마을 입구에 있는 붉은 벽돌집 앞에 임생금(103) 할머니가 서 있었다. "보통은 아침에 밭에 나가 콩이나 깨를 심는데, 오늘은 집에서 좀 쉬고 있지." 허리를 곧게 펴고 걷는 모습에서 또렷한 기운이 느껴졌다. 작은 체구지만 목소리는 단단했고, 안경 너머의 눈빛은 맑았다. "이도 튼튼해. 밥 먹을 때 숟가락, 젓가락질도 잘해." 임 할머니의 얼굴에는 세월을 건너온 이의 여유가 담겨 있었다.
마을회관 쪽으로 가니 김두리(100) 할머니가 꽃무늬 티셔츠에 스카프까지 곱게 두른채 나왔다. "마을이 조용해서 그런가, 마음이 늘 편안해. 그래서 내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건가." 김 할머니는 매일 아침 마을회관에 나와 시간을 보내고 오후엔 동네 밭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일과처럼 지킨다. "백살이 넘은 사람치고 꽤 총명한 편 아니냐. 자꾸 움직여야지. 먹는 것도 잘 먹어. 옛날엔 풀로 반찬 해먹었지만 요즘은 고기도 많이 먹고. 암튼 좋지."

밭에서 깨를 심다가 목에 수건을 두른 채 마을로 돌아오던 오무식(100) 할머니는 "농번기엔 밭에 나가고, 장날엔 상추나 양파, 미나리 같은 걸 수확해 시장에 내다 팔아 가끔 용돈벌이도 해. 귀가 좀 어두운 게 불편해."라고 했다. 마을회관 방을 정리하던 홍순연(89) 할머니는 "백살 넘은 (세 명의) 언니들에 비하면 난 어린 편이지"라며 환하게 웃었다.
백살을 넘긴 할머니들은 모두 16살 19살 등 10대에 하서마을로 시집와서 80년 넘게 이곳에서 살고 있다. 땅을 일구고 자식을 키우며 손수 고추장과 된장을 담그며 평생을 보냈다. 지금도 큰 병치레 없이 스스로 밥을 짓고 움직인다. "장수의 비결이 뭐냐"는 물음에는 "밭에 나가고, 동네를 걸어 다니며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다. 또 "마음 편하고, 스트레스 없는 마을에서 상추나 된장, 콩 같은 시골 밥을 잘 챙겨 먹는 게 건강 비결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호미를 들고 밭을 일구던 한 80대 할머니는 "우리 마을은 물이 참 좋아. 남창천이 옆에 흐르는데 그 물이 장수마을로 만든 것 아닐까"라고 했다.
마을회관은 할머니들의 작은 사랑방이다. 아침이면 마을회관에 모여 시간을 보내고 점심에는 손수 담근 물김치나 된장, 밭에서 딴 상추로 함께 식사한다. 이날 점심은 채소를 듬뿍 넣은 비빔밥이었다. 마을회관 안에서는 웃음소리와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휴대폰 꺼내놔야 잘 들리지", "부산 아들네 갔다가 어제 돌아왔어" 같은 이야기가 오간다. 할머니들은 이렇게 서로의 일상을 나누며 외로움을 잊고,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듯했다.

김윤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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