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금 다 털어 연습장 차렸다…당돌한 ‘당구 천재’

18세 소년에게는 얼마나 큰 돈인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을 1억원. 스마트폰도 바꾸고 싶고, 번듯한 게임용 컴퓨터도 사고 싶지만, 당구 유망주는 자신에게 전용 연습장을 선물했다. 아무런 간섭 없이 오롯이 당구만 생각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공개한 소년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고 이상천과 고 김경률 그리고 김행직(33)과 조명우(27)를 뒤이을 ‘당구 천재’ 김영원(18)을 최근 서울 방학동 연습장에서 만났다.
지난해 11월 프로당구 NH농협카드 PB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받은 상금 1억원으로 연습장을 마련했다는 김영원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모처럼 쉬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과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고 마음껏 영화도 봤다”며 “올 시즌 개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만큼 연습도 게을리할 수 없었다. 마침 지난달 집 근처 연습장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 매일 이곳에서 훈련한다. 2승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2007년생 김영원은 한국 당구가 주목하는 차세대 스타다. 중학교 때부터 ‘신동’으로 불렸고, 지난 시즌 데뷔하자마자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선배들을 긴장시켰다. 꾸준한 활약으로 상금(1억5750만원)과 포인트(21만4500점)에서 모두 4위에 올라 우승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김영원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 김창수(44)씨를 따라 찾은 당구장에서 처음 큐를 잡았다. 재미 삼아 즐기는 정도였다가 흥미를 느껴 전문적으로 배웠다. 이후 서울당구연맹 소속으로 전국종별학생선수권을 제패하는 등 급성장했고, PBA 2부 투어를 거쳐 지난 시즌 1부 투어로 올라왔다. 특히 당구에 전념하려고 고교 진학을 포기한 게 알려져 화제가 됐다.
김영원은 “사실 당구만 치기에도 하루가 모자란다. 점심 즈음 연습장으로 나와 오후 8시까지 개인 연습을 한다. 가끔은 다른 당구장에서 동호인과 게임도 한다”며 “저녁에는 영어 공부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또 하체 보강을 위해 틈날 때마다 중랑천을 따라 1시간씩 뛰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고 웃었다. 다부진 각오를 보여주듯 연습장 입구에 ‘남들만큼 하는 노력은 노력이 아니다’라고 적혀있다.
김영원의 최대 장점은 부드러운 스트로크다. 흔들림 없이 일정한 스트로크로 기본적인 포지션 득점을 놓치지 않는다. 본인 표현을 빌리면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힘도 가졌다. 물론 약점도 있다. 김영원은 “힘이 필요한, 소위 말해 배팅이 많이 들어가는 공은 아직 처리가 미숙하다. 또 스리뱅크샷(쿠션 벽을 세 번 이상 맞히는 샷) 보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교 대신 연습장과 대회장에서 생활하는 김영원은 당구에서 인생을 배우고 있다. 특히 프로 무대에서 한참 위 선배들과 경기하며 세상을 배운다. 에피소드가 있다. 지난해 6월 우리금융캐피탈 PBA 챔피언십 때다. 준결승전에서 부라크 하샤시(19·튀르키예)를 꺾은 김영원이 결승 진출의 기쁨을 누리려는 순간, 아버지 김씨가 다급히 불러 세웠다. 김씨는 심판에게 인사하지 않은 아들을 다그쳤고, 그제야 김영원은 심판에게 인사한 뒤 관중석을 향해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아버지 김씨는 “아이 키우는 부모 마음은 다 같지 않겠나. 실력을 떠나 인성이 먼저인 선수로 키우고 싶다”며 “(김)영원이는 말썽을 피우거나 투정을 부릴 줄 모르는 아이였다. 심성이 착하고 성격이 차분한 아들이 모두에게 인정받는 선수로 성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영원은 “지난 시즌 우승은 했지만, 결승전에서 패한 적도 처참하게 진 적도 있다. 그런 경험을 교훈 삼아 올 시즌에는 더욱 단단한 당구를 선보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고봉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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