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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왕년 일인자’ 최정·박정환의 반격

김은지 9447, 최정 9439. 5월의 랭킹 점수인데 김은지 9단이 최정 9단을 살짝 앞서며 1위로 올라섰다. 최정과 김은지의 1위 쟁탈전은 올해 내내 이어졌다. 매달 순위가 바뀌었다. 김은지는 2007년생으로 18세, 최정은 1996년생으로 29세다. 전성기에 접어든 김은지의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세계바둑을 휩쓸었던 ‘여제’ 최정의 시대도 드디어 저무는가 싶었다.

이달 중순 닥터G 여자 최고기사결정전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김은지에 져 패자조로 밀렸던 최정이 험난한 여정 끝에 다시 결승전에 올라와 김은지와 마주 앉았다. 최정은 첫판에 허망한 실수를 저지르며 힘없이 졌다. 집중력 문제로 보였다. 두 기사의 기풍은 두터움과 완력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한마디로 전투에 능하다. 집중력은 나이와 깊은 관계가 있다. 나이가 들면 어느 순간 집중력을 잃는다. 여자바둑에 세대교체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많은 이가 그렇게 믿었다.

하나 최정은 놀랍게도 2, 3국에서 연거푸 승리하며 우승컵을 차지했다. 새 강자 김은지의 힘이 여자바둑을 장악했다 싶을 때 최정은 멋지게 반격했다. 여제의 진정한 힘을 보여줬다. “성적을 떠나 바둑 자체가 재미있는 것은 지금인 것 같다. 앞으로 어떤 바둑을 둘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최정의 승리 소감이다. 이 말을 곱씹어보면 김은지의 추격에 몰린 최정의 마음고생을 느낄 수 있다. 고생 끝에 그가 도달한 것은 승리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 일인자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언제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도록 마음을 비우는 것. 그러고 나니 바둑이 재미있어졌다. 다음엔 또 어떤 바둑이 나를 기다릴까 기대도 하게 됐다.

남자바둑에서도 일인자와 이인자가 얽힌 작은 사건이 있었다. 지난 21일 LG배 세계대회 16강전에서 1위 신진서 9단과 2위 박정환 9단이 만났다. 여자와 달리 남자는 신진서가 압도적 1위다. 2020년 1월부터 현재까지 65개월 연속 1위다. 더구나 박정환은 신진서만 만나면 졌다. 지난 3년간 17전17패였다. 과거 일인자로 군림했던 박정환에겐 모진 시련이었다. 한데 LG배 대결에서 박정환 9단은 거의 완벽한 승리를 거둔다. 끝없이 이어진 3년간의 패배에 종지부를 찍었다. 박정환은 감격한 듯 보였다. “(신진서를 만나면) 연패에 대한 부담이 컸다. 형세가 좋을 때도 어차피 지겠지 싶었다.”

바둑판 앞에 앉았을 때 질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그 판은 반드시 진다. 그러나 바닥으로 계속 추락해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어지면 상황이 변한다. 저절로 마음이 비워진다. 승리에 대한 집착이나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모두 뜬구름이 된다. 사실 지난 시즌 중국리그에서 박정환의 성적은 13승3패로 준수하다. 박정환은 중국 강자들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신진서만 아니면 여간해서 지지 않는다. 하나 신진서만 만나면 바둑이 안 된다. 그런 박정환이 연패 사슬을 끊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거듭날 기회를 잡았다.

여자바둑은 지금 세대교체를 놓고 한창 격전 중이고 남자바둑은 박정환에서 신진서로 넘어간 지 5년이 넘었다. 세계 무대로 시선을 넓히면 여자 쪽은 최정과 김은지가 막강해 앞날에 대한 걱정이 별로 없다. 최정은 이런 말을 했다. “언젠가 김은지가 여자바둑을 이끌겠지만 나도 최대한 버텨 다른 여자기사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돕겠다.”

남자 쪽은 어둡다. 신진서가 세계 최강인데도 필마단기로 분투하는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인다. 중국은 정상급 신예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한국은 신진서를 뒤이을 신예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중국을 상대할 만한 장수가 크게 부족하다. 32세의 박정환이 전성기의 자신감을 되찾는다면 한국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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