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경의 아세안 워치] 아세안·걸프·중국의 ‘골든 트라이앵글’…새로운 지정학 축 될까

아세안 위상 강화 나선 말레이시아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말레이시아가 주도하는 이 새로운 실험은 향후 동아시아 지정학 판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25년은 아세안 공동체 창설 10주년이자 ‘비전 2045’ 채택이 예정된 해로, 말레이시아가 아세안의 미래 방향성을 주도할 중요한 시점이다.
전 세계 GDP 24%, 21억 명 인구
남반구 국가 신경제권 형성 가능
한국, 새로운 다자협력 추진해야
남반구 국가 신경제권 형성 가능
한국, 새로운 다자협력 추진해야
말레이시아는 인구 약 3400만 명, 국내총생산(GDP) 4200억 달러로 아세안 내 5위 규모지만, 1인당 GDP는 1만2540달러로 3위 수준을 자랑한다. 특히 인구 절반 이상이 무슬림이자 세계 최대 이슬람 채권 수쿠크를 발행하는 이슬람 금융허브로서, 중동과 아세안을 잇는 독특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아세안-걸프-중국’을 끌어모은 안와르의 구상에는 3가지 목표가 담겨 있다. 첫째는 아세안 의장국으로서 아세안 중심성 강화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아세안이 강대국 사이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려면 새로운 파트너십이 필요해서다. 동시에 말레이시아의 국가적 위상 제고라는 실리도 노린다. 싱가포르의 금융, 태국의 외교, 인도네시아의 규모에 맞서 이슬람 금융허브로서 중동-아세안 연결의 중심축 역할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셋째는 트럼프 관세 정책에 대한 대응이다. 미국의 수출 제한과 관세 위협 속에서 새 시장을 창출하고 기술 접근 기회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최근 마무리된 ‘중국-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 3.0’이다. 디지털·녹색 경제, 공급망 연결성, 기술 표준화 등 9개의 새 분야가 추가돼 2025년 말 공식 서명을 목표로 한다. 이는 단순한 무역 협정을 넘어 중국의 ‘운명 공동체’ 전략을 지역적으로 실현하는 핵심 도구로, 양 지역 간 산업·공급망 통합을 촉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이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GCC는 느슨한 연합체로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경쟁, 각종 현안에 대한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아세안 내부도 회원국 간 이해관계 조율이 쉽지 않고, 아세안-GCC 협력은 2023년에야 첫 정상회의를 개최할 정도로 초기 단계다.

상황을 더 복잡하게 한 것은 트럼프의 행보다. 사우디와 UAE, 카타르를 첫 순방지로 택해 “훈수 두지 않겠다”며 투자 중심의 중동 전략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걸프 국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더욱 정교한 균형 외교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역시 남중국해 문제로 아세안의 경계심에 직면해 있다. 일부 아세안 회원국은 중국 기술과 투자 의존을 경계하지만, 중국의 기술표준 통합과 녹색전환 협력은 경제적 이익이 큰 만큼 거부하기 쉽지 않다.
역설적으로 미·중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GCC 국가에 아세안과의 협력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국익을 최대화하려면 제3의 파트너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골든 트라이앵글’이 실질적인 지정학적 축으로 발전할지, 상징적 제스처에 그칠지는 결국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의 힘겨루기와 각국 지도부의 정치적 셈법에 달려 있다.
아세안-걸프 경제권 편승 전략 펼쳐야
말레이시아가 주도하는 이번 실험은 한국에도 중요한 함의가 있다. 중국과 아세안이 FTA 3.0을 통해 기술표준 통합과 녹색전환 협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한국이 소외되지 않으려면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누가 집권하든 새 정부가 인공지능(AI) 투자를 대폭 확대한다고 하지만, 기술 개발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장을 키우려면 아세안-GCC라는 거대한 신흥 경제권에 ‘올라타는’ 전략이 필수적이다. 한국의 AI와 반도체, 녹색 에너지 기술을 이 3자 협력 프레임워크 안에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 역시 새로운 다자 협력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한-아세안, 한-중동, 한-아프리카 등 한국만의 독특한 연결고리를 활용한 혁신적 협력체 구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복잡한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각국이 정교한 균형 외교를 펼치는 만큼, 한국은 단순한 추종자가 아닌 새로운 협력 질서의 능동적 디자이너로 나서야 한다. 안와르의 야심 찬 도전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고영경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디지털통상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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