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봉의 시선] 보수는 이제부터라도 정신 차려라

보수가 잘못해 치르는 조기 대선
수구반동 이미지 과감히 떨치고
보수의 미덕 회복해야 미래 있어
수구반동 이미지 과감히 떨치고
보수의 미덕 회복해야 미래 있어

이러니 선거가 심드렁하게 느껴진다. 중견 출판인 A씨는 대선 전망을 묻자 “진짜 그것 때문에 전화했느냐”고 반문했다. ‘결과는 자명한 거 아니냐’고 밖에 해석할 수 없는 반응이다. 사립대 사학과 B 교수는 “찍을 사람이 없어 투표 안 할까 생각 중”이라고 털어놨다. 이재명에 대해선 “학생운동을 한 것도, 비전을 제시한 것도 아니고, 사생활도 깨끗하지 않은 데다 거짓말을 자주 한다”는 이유에서, 김문수에 대해선 “극에서 극으로 신념을 바꾼 건 평가할 수 있겠는데 시각이 근본주의적인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표를 주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김문수가 대통령 돼서 혹시라도 윤석열을 봐주는 상황이 걱정되기도 하고, 지금도 사법부를 뒤흔드는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5년 후 한국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로 남을 수 있을까 우려되기도 한다고 했다.
어쨌든 선거는 치러지고 승자는 가려진다. 조기 대선 불쾌지수가 높을수록, 6월 3일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따질 건 따져봐야 한다. 윤석열은 또 보수는 왜 그랬을까.
보수가 무엇인지 공부하려면 18세기 영국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를 우회하기 어렵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라고 한다. 실용만을 강조하는 상아탑에 염증을 느꼈다며 2019년 정규직 교수(한림대)를 그만둔 사회학자 조형근에 따르면, 미국의 보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버크가 쓴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다음과 같은 보수주의 기본 요소를 추출했다. (‘합리적 보수는 언제 올까?’, 2017) ①때로는 편견이 이성보다 우리를 더 잘 인도하고 ②인간은 불평등할 뿐 아니라 ③현존하는 악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늘 더 큰 악을 낳는다는 것 등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세상의 소유자가 아니라 종신 세입자일 뿐이다. 쉽게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보수주의자에게 역사는 가능한 한 천천히 우아하게 (변화에) 양보하는 과정이었다. 우리 지식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는 인식론적 회의주의, 전통은 유익하다는 역사적 공리주의다.
이런 조심스러운 태도가 개인에게나 공동체에나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북핵을 이고, 강대국들 사이에서 지정학에 신경 쓰며 살아야 하는 처지 아닌가.

보수주의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건 우리 팔자소관이라고 해야 할까.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윤비 교수는 한국의 보수주의는 망가진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위험한 국가의 위험한 민주주의』, 생각정원) 일제 강점, 한국 전쟁을 거치며 귀히 여겨야 할 전통(유교적 과거)과 급격하게 단절됐고, 이후 이념의 내용을 반공과 극단적 국가주의, 성장 담론으로 채워왔는데, 이런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이념의 내용으로 유효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보수가 지리멸렬에서 벗어나는 길은 뭘까. 해법을 몰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구반동이라는 혐의와 결별하는 것이다. 민주화운동동지회 주대환 회장은 “5·18 북한군 개입설이나 부정선거론 같은 마약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준석은 단일화에 호응하지 말고 완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차례 공언한 약속을 깨서 유권자의 신뢰를 잃는 일이 없어야 이번 대선 이후 미래가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보수는 책 좀 읽어야 한다. 출판인 A씨는, 민주당은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위원장으로 있는 K문화강국위원회에서 출판단체인 한국출판인회의 관계자를 불러 최근 정책 간담회를 가졌다고 전했다. 출판 콘텐트 제작비용 세액 공제 등 현안을 들었다고 한다. 출판인회의가 민주당에만 선을 댄 건 아니다. 국힘에도 똑같은 현안 자료를 보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2022년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보수는 책을 싫어 하나.
신준봉([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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