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특파원 시선] 휴대전화 쓰려고 생체정보 등록했습니다

러시아, 외국인 휴대전화 이용자 보안인증 강화…은행서 목소리 녹음

[특파원 시선] 휴대전화 쓰려고 생체정보 등록했습니다
러시아, 외국인 휴대전화 이용자 보안인증 강화…은행서 목소리 녹음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이 숫자들을 읽으세요. 한국어로 읽어도 괜찮습니다."
"0 1 2 3 4 5 6 7 8 9…"
이달 초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은행에서 직원의 안내에 따라 숫자들을 읽었다. 총 3가지 배열의 숫자를 읽는 목소리는 녹음되고 있었다. 숫자를 읽기 전에는 얼굴 사진도 찍혔다.
요즘 러시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화두 중 하나는 '생체정보 등록'이다. 러시아 정부가 자국에서 휴대전화 심(SIM)을 이용 중이거나 새로 개통하려는 외국인에게 생체정보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러시아에서 휴대전화를 개통해 사용 중인 외국인은 7월 1일까지 생체정보를 등록해야 한다. 휴대전화라는 기계의 특성 때문인지 지문이 아닌 얼굴 사진과 목소리 정보를 수집한다.
그런데 생체정보를 등록하는 과정이 간단하지 않다. 먼저 공증소에 가서 여권 번역 공증을 받아야 한다. 이후 공증본과 여권을 갖고 주민센터에 가서 연금계정의 일종인 개인보험번호 '스닐스'를 발급받아야 한다.
스닐스 신청을 접수한 주민센터 직원은 "번호가 바로 나올 수도 있고 며칠 뒤에 나올 수 있다. 발급 확인 문자가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다"고 애매한 안내를 해줬다.
번호 발급을 확인하면 2주 뒤 다시 주민센터를 방문, 이 번호를 기반으로 한국의 '정부24'와 비슷한 러시아 정부 포털인 '고스우슬루기'에 가입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은행에서 생체정보를 등록하면 비로소 사용 중인 이동통신사 매장을 방문해 사용 중인 휴대전화 심카드에 대한 본인 인증을 할 수 있다. 러시아에서 휴대전화를 새로 개통하려는 외국인도 동일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착오로 인한 헛걸음까지 포함해 공증소와 주민센터, 은행, 통신사 등을 총 6번 정도 방문한 끝에 이 절차를 완료할 수 있었다.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그나마 주민센터와 은행이 평일 오후 7∼8시까지 영업하고 토요일에도 문을 열었다.

러시아인 지인은 "주민센터에 독립국가연합(CIS) 국적 사람이 많았는데 대부분 휴대전화 등록 업무를 처리하는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과정이 복잡하기도 하고 개인정보를 제출하는 것도 꺼림칙했지만 러시아에서 장기간 지내려면 어쩔 수 없이 러시아 당국의 요구에 응해야 했다.
러시아는 자국 휴대전화 이용 외국인의 생체정보만 수집하는 게 아니다. 다음 달 30일부터 모든 공항과 육로 국경검문소에서 입국하는 외국인의 생체 정보를 수집한다.
이에 따라 한국인을 포함한 무비자 입국 대상 외국인은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미리 얼굴 사진 정보를 직접 제출해야 한다. 모스크바 지역 공항들은 이미 지난해 12월 1일부터 시범적으로 외국인 입국자의 생체정보를 수집해왔다. 출입국 심사를 받을 때 전자기기에 엄지와 네 손가락과 지문을 찍고 사진 촬영도 의무로 해야 한다.
러시아가 외국인에게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는 명분은 '보안 강화'다. 외국인에 의한 테러, 사기, 사이버 위협, 간첩 사건이 증가하고 있어 이를 예방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모스크바 외곽에서 14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해 충격을 안긴 '크로커스 시티홀' 테러가 이러한 움직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슬람국가(IS)의 지부인 ISIS-K(호라산)가 이 테러의 배후를 자처하고 중앙아시아인들이 직접적인 공격 가해 혐의로 붙잡히면서 러시아에서 이주민 문제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러시아는 이 테러가 우크라이나와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그 후 러시아 당국은 지난해 4월부터 자국에서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외국인의 생체정보를 수집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러시아 디지털개발부는 "통신 네트워크를 사용해 불법 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으로 3년 이상 서방의 고강도 제재를 받으면서도 '러시아는 고립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지난해 자국에서 브릭스(BRICS) 정상회의를 열고 지난 9일에는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20여개국 정상을 초대해 성대한 전승절 열병식을 개최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국에서 여전히 80%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작전에 대한 간접적 지지의 표시로 여겨진다.
하지만 러시아 영토에서 벌어지는 테러가 증가하면 이러한 민심이 흔들릴 수 있다. 러시아가 자국 내 외국인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email protected]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최인영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