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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옆 거대 블랙박스…‘찰나의 예술’ 품었다

29일 서울 도봉구 창동에 개관하는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사진전문 첫 공립미술관이다.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지하철역과 아파트 단지 사이에 블랙박스 모양 건물이 들어섰다. 서울 도봉구 창동에 29일 개관하는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다. 사진만 다루는 공립미술관으로 국내 최초다. 한정희 관장은 “그간 뮤지엄 한미, 부산의 고은사진미술관 등 사진 전문 사립미술관들이 역할을 해 온 상황에서, 긴 호흡으로 한국 사진사 연구를 지속하고 무료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공공 사진미술관으로 자리 잡겠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2015년 부지를 확정, 건립 준비를 시작한 지 10년 만이다. 2019년 건축 설계 공모에 국내외 74팀이 응모, 오스트리아의 야드릭 아키텍투어와 일구구공 도시건축의 설계안이 선정됐다. 디자인은 카메라의 조리개가 열리고 닫히는 모습에서 착안했다. 연면적 7048㎡(2132평)로 검은 외피 한쪽을 살짝 들어 올린 듯한 형태의 출입구를 지나 1층에 포토북 카페, 2·3층에 4개의 전시장, 4층에 사진 전문 도서관과 암실·교육실 등을 갖췄다.

사진미술관은 한국에 사진술이 도입된 1880년대부터 20세기 말까지 활동한 사진가들을 조사, 2000여명의 목록을 정리했다. 이를 바탕으로 1920~90년대 작품과 자료 2만여 건을 수집해 26명의 사진가 컬렉션을 구축했다. 이 가운데 한국 예술사진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든 5명의 사진가를 조명한 소장품전 ‘광채(光彩): 시작의 순간들’을 개관전으로 연다.

‘광채: 시작의 순간들’에 출품된 정해창의 ‘무제’(연도 미상).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1929년 한국인 최초로 사진 개인전을 연 정해창(1907~67) 유족에게서 수집한 세 권의 스크랩북을 통해 생전에 그가 직접 인화한 사진들을 내놓았다. 정해창의 필름은 그간 구본창·주명덕 인화로 국내외에서 전시된 바 있다. 하얀 머리쓰개에 단정하게 한복 입은 여인의 초상, 가파른 흙길을 내려가는 조선의 지게꾼, 다중노출로 찍은 실험적 정물 등이 누렇게 변색한 엽서 크기 사진에 담겨 있다.

병풍에 사진을 붙여 전시를 열기도 했던 만큼 동양화처럼 낙관을 찍은 사진도 있다. 조선 미술전람회 등의 공모전에 한 번도 응모하지 않고 개인전을 열었을 정도로 자의식 강했던 정해창은 사진이라는 신문물을 다루되 서구적인 것의 모방이 아닌 자기만의 새로움을 찾았고, 이를 어떻게 예술화할지 고민했다.

이형록(1917~2011)은 1950~60년대 신선회·싸롱아루스·현대사진연구회 등을 조직해 리얼리즘 사진을 확산했다. 전후 도시 풍경을 카메라에 담은 그는 건설 현장 철골 구조에서도 기하학적 형태와 명암 대비를 봤다. 해방 후 첫 사진 개인전을 연 임석제(1918~96)는 탄광 노동자들의 일상을 근거리에서 포착하는 등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미학과 윤리를 정립한 인물로 꼽힌다. 조현두(1918~2009)는 눈 쌓인 풍경이나 창덕궁 인정전의 단청도 추상화처럼 찍었다. 4회 연속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을 수상하며 추상 사진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한국 여성 사진의 선구자 박영숙(84)의 1960년대 초기작 ‘뉴 마스크’ 시리즈도 전시됐다.

겨울 마포 일대의 얼어붙은 강을 찍은 조현두의 ‘잔설’(1966)은 제15회 국전에서 사진 부문 특선을 수상했다.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대중에 인지도가 낮은 인물들이라 첫 공립 사진미술관의 개관전 주인공으로 대표성을 가질까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손현정 학예사는 “출발점인 만큼 기존 사진계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모습들을 다양한 맥락 속에 보여주고 싶었다. 전시된 157점 중 3점을 제외하고 모두 소장품”이라고 설명했다.

건립과정을 담은 전시 ‘스토리지 스토리’는 미술관이 자리 잡은 창동(倉洞·창고가 있는 동네)에서 이름을 따왔다. 3년간 촬영한 미술관 건립 사진 아카이브(정지현), 미술관 소장자료의 디지털 전환 과정(정멜멜), 소장품 이미지의 머신러닝(오주영), 도시개발로 사라진 동네 곳곳 장면들(주용성), 철근·자갈·콘크리트 등 미술관 건축에 사용된 재료의 기원을 추적한 사진과 설치(원성원), 미술관에 입고된 물품을 촬영해 재조합한 이미지(서동신) 등으로 사진 매체의 확장성을 엿볼 수 있다.

사진미술관은 서울시립미술관 분관으로 운영된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사진미술관은 북서울미술관과 함께 서울 동북권의 문화 거점 역할을 할 것”이라며 “11월 뉴미디어 전문 서서울미술관이 개관하면 서울시립미술관은 8개 분관 시대로 도약한다”고 덧붙였다.

6일 건축가 윤근주가 미술관 건물에 대해, 7일 사진가 구본창이 정해창에 관해 이야기하는 등 매 주말·공휴일마다 소장품과 건립 과정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개관전은 10월 12일까지, 무료.





권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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