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세계적으로 인기가 없다. 최근 100개국 11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 대한 인식(-5%)이 중국(14%)보다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국가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인기가 많았다는 의미다.(2025 민주주의 인식 지표) 트럼프가 취임 후 쏟아낸 정책들이 오랜 질서와 현상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와 기업은 무역 질서 재편에 긴장하고, 시민들은 미국 여행과 유학길이 불편해졌다.
트럼프에 대한 불호는 타국 정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방인 캐나다와 호주에서는 인기가 별로 없던 중도좌파 집권당이 상승세였던 보수 야당을 누르고 정권을 지켜냈다.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이민 반대, 공무원 감축 같은 트럼프식 공약을 내놓은 보수 후보에게 참패를 안겼다. 트럼프 정책은 글로벌 무역 체계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지난 80년간 유효했던 자유무역 규칙은 설 자리를 잃었고, 미국이 쏘아 올린 관세전쟁에 유럽연합(EU)·중국이 참전하면서 세계 경제는 쑥대밭이 될 위기에 처했다.
세계 무역전쟁 속 치러지는 대선
후보들, 산업·일자리 대책 없어
정세 변화에 무심한 한국 정치
이런 국제 정세 속에 치르는 한국 대통령 선거는 놀랄 만큼 평온하다. 계엄·탄핵·사법리스크 등 국내 정치가 토론의 중심이다. 정책 검증보다는 네거티브 공방이 주를 이룬다. 사실, 검증할 만한 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주요 대선 후보 공약집은 마치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잔잔’하다. 2017년도 공약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로 현재 정세가 거의 반영돼 있지 않다. 한국 정치는 국경 밖과 단절돼 진공관에 들어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내수 시장이 작고 수출 중심인 한국 경제는 어느 나라보다 트럼프발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당장 기업 실적, 주가지수, 국민 일자리에 미칠 파장이 분명한데도 한국 경제·산업 구조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공약은 전무하다. 진보·보수 후보를 막론하고 ‘트럼프 정부와 협력하겠다’는 말뿐이다. ‘어떻게’는 당연히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경제 외교 강화, 수출 시장 및 품목 다변화를 제안했지만, 이는 근본적인 처방으로 보기 어렵다. 세계 최대이자 가장 구매력 높은 미국 시장은 여전히 기업에 가장 중요한 승부처이기 때문이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관세 패키지 협상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트럼프와의 협상을 지나치게 낙관하는 태도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중국·베트남으로 이전한 국내 공장의 ‘리쇼어링’ 정책을 주장했는데, 현재의 고비용 구조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작다.
해외에서 인기 없는 트럼프지만, 자국 내에서도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트럼프 지지도는 취임 직후 51%대 44%로 긍정 여론이 7%포인트 앞서다가 4월 말엔 45%대 52%로 부정 여론이 7%포인트 많았다. 그러나 최근 중동 순방, 중국과 무역협상 이후 긍정 여론이 48%까지 회복해 부정 여론(49%)과 사실상 동률이 됐다.(리얼클리어폴리틱스)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는 절반의 미국인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달콤한 약속을 한번 믿어보려는 이들일 것이다. 방법론에서 이견이 있더라도, 일자리를 만들고 살림살이를 좀 나아지게 하겠다는 트럼프식 ‘비전’에 베팅하는 사람들이다. 결과적으로 정답을 못 찾거나 틀린 답에 귀결되더라도, 국민의 고충을 이해하고 현상을 타파하자는 문제 제기만으로도 트럼프는 이들에게 비전을 제시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트럼프는 관세를 앞세워 미국에 제조업을 유치하려 한다. ‘관세를 물기 싫으면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압박한다. 세계화와 자유무역 파도에 휩쓸려 사라진 저학력 노동자 일자리를 다시 만들려는 취지다. 국내 제조업체들도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고율관세로 멕시코·캐나다·베트남·인도 할 것 없이 ‘우회로’까지 깡그리 차단해 달리 방도가 없어 서다. 이는 국내 일자리 감소를 의미한다.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시급함에도 이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어느 후보에게서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 경제가 정점을 지났다는 분석이 있다. 내년에 잠재성장률이 1% 대로 떨어지고(경제협력개발기구), 6년 내 0%대에 진입할 수 있다(한국개발연구원)는 경고도 나왔다. 한국이 가장 위대했던 때는 언제일까. 수출 드라이브로 경제가 두 자릿수씩 성장하던 1970~80년대였을까. 인권이 성장하고 첨단산업이 고도화한 1990~2000년대였을까. K문화와 개인의 자유가 성장한 2010년대였을까. 적어도 경제성장이 정체되고, 사회 갈등은 최고치인 지금은 아닐 것이다. 한국을 다시 위대하게 이끌 지도자는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