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는 후보들

중도 외치다 급하면 진영 안으로
지지층의 한계에서 못 헤어나면
나라도, 대통령도 결국 불행해져
대통령 성공 열쇠는 ‘탈레반’ 제어
지지층의 한계에서 못 헤어나면
나라도, 대통령도 결국 불행해져
대통령 성공 열쇠는 ‘탈레반’ 제어
이번 대선을 통해 대통령에 대한 현실론과 이상론이 다시 조화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 국민 통합이라는 희망이 솟았다. 순진했다. 새 정치의 희망을 보여줘야 할 유력 대선 주자들이 두꺼운 진영의 틀에 갇혀 있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말로는 통합과 외연 확장을 외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면 진영으로 돌아간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의 예를 들며 ‘사익과 공익을 교묘히 연결하는 능력’을 정치인의 자질로 들었지만, 민주당과 이 후보의 경우는 속이 너무 들여다보인다.
개인적으로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기존 재판은 중단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알고도 투표한 주권자의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 재판 지연 해소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논의해 볼 만하다. 그러나 집권 세력 스스로 법으로 방어막을 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되는 격이다. 그랬다간 법치를 말할 수 없게 된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다면 발동이 걸릴 ‘내란 심판’도 냉소를 받을 게 뻔하다. 사법 개혁은 어디까지나 국민적 동의를 얻어 신중하게 추진할 사안이다.

김 후보는 대통령의 당무 개입 차단, 국회의원 정수 축소와 불체포 특권 폐지, 대통령 임기 단축을 통한 2028년 국회의원·대통령 동시선거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나름대로 신선하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윤석열의 그림자가 이런 공약을 덮어버렸다. 목을 매던 이준석과의 단일화도 어렵게 만들었다. 아스팔트 보수와 절연하지 못한 김문수의 한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이다. 사실 이 문장의 진정한 의미는 그다음 구절이 있어야 완성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아브락사스(Abraxas)는 고대 그리스와 중근동 지역에서 선과 악, 빛과 어둠을 통합한 존재다.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모순되거나 이질적인 존재를 내적으로 통합하고 일체화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 과정이 없으면 영원히 어린아이에 머무르거나 자신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대통령이 탈레반과도 같은 강경 지지 세력에 의존하는 자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성장할 수 없다. 국민도, 대통령 본인도 불행해진다.
이현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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