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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는 후보들

이현상 논설주간
대통령은 이중적 존재다. 지지층에서 출발하지만 국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미국 정치학의 대가 로버트 달은 이를 두고 “우리 미국인들은 대통령이 수완 좋은 현실 정치인(politician)인 동시에 탁월한 국가 지도자(statesman)이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미국 헌법과 민주주의』). 해방 후 미국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한국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극은 이런 이중성을 망각한 데서 비롯됐다. ‘국가 지도자’라는 생각만 했지, ‘현실 정치인’이라는 사실은 외면했다. 야당을 ‘수완 좋게’ 타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반국가 세력으로 취급했다.

중도 외치다 급하면 진영 안으로
지지층의 한계에서 못 헤어나면
나라도, 대통령도 결국 불행해져
대통령 성공 열쇠는 ‘탈레반’ 제어

이번 대선을 통해 대통령에 대한 현실론과 이상론이 다시 조화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 국민 통합이라는 희망이 솟았다. 순진했다. 새 정치의 희망을 보여줘야 할 유력 대선 주자들이 두꺼운 진영의 틀에 갇혀 있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말로는 통합과 외연 확장을 외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면 진영으로 돌아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8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광장에서 유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현재 가장 유력하다는 이재명 후보. 시대착오적 계엄이 초래한 거대한 정치적 지각변동 속에서 운명처럼 행운이 찾아왔다. 중도 확장을 내걸고 어깨띠 1번 숫자 끝에 빨간색 한 점을 넣는 여유까지 부렸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만큼 진영의 한계를 깰 수 있지 않을까 주목됐다. 그러나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뀌고 있다. 가장 심각한 건 사익과 공익의 뒤섞기다. 민주당 강경파들은 형사소송법, 헌법재판소법, 법원조직법, 선거법 등 이 후보 사법 리스크와 관련된 것이라면 모조리 바꿀 태세다. 이 후보의 자세는 모호하다. “자중이 필요하다”고 했다가 “사법 총구가 우리를 향해 난사하면 고쳐야 한다”고도 한다. 존재의 안위라는 원초적 욕망 앞에서 공동체의 시스템이 마구 흔들린다. 심상찮은 여론에 ‘대법관 100명 확대’ ‘비법조인 대법관 임명제’ 등은 일단 철회했지만, 작전상 후퇴일 뿐이라는 의심은 여전하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의 예를 들며 ‘사익과 공익을 교묘히 연결하는 능력’을 정치인의 자질로 들었지만, 민주당과 이 후보의 경우는 속이 너무 들여다보인다.

개인적으로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기존 재판은 중단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알고도 투표한 주권자의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 재판 지연 해소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논의해 볼 만하다. 그러나 집권 세력 스스로 법으로 방어막을 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되는 격이다. 그랬다간 법치를 말할 수 없게 된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다면 발동이 걸릴 ‘내란 심판’도 냉소를 받을 게 뻔하다. 사법 개혁은 어디까지나 국민적 동의를 얻어 신중하게 추진할 사안이다.

김문수(왼쪽)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권성동 원내대표가 28일 경남 김해수로왕릉 공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재명 후보가 변신 페이크 동작이라도 취했다면 김문수 후보는 그런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한밤 후보 교체 소동을 벌인 친윤 권성동 원내대표를 그대로 뒀다. 부정선거 영화를 보고 나온 윤석열에 대해선 “영화도 많이 보시고, 사람도 많이 만나시고 좋은 거 아니냐”고 두둔했다. 한동훈의 협조를 바라면서도 친윤계 윤상현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하는 인사는 또 뭔가. 무소의 뿔처럼 나아갈 용기 대신 어떻게든 친윤에 기대는 어정쩡함만 남았다.

김 후보는 대통령의 당무 개입 차단, 국회의원 정수 축소와 불체포 특권 폐지, 대통령 임기 단축을 통한 2028년 국회의원·대통령 동시선거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나름대로 신선하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윤석열의 그림자가 이런 공약을 덮어버렸다. 목을 매던 이준석과의 단일화도 어렵게 만들었다. 아스팔트 보수와 절연하지 못한 김문수의 한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가 28일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압도적 새로움’을 내건 이준석은 어떤가. 기득권 정치판을 흔들 메기 역할이 기대됐으나 오히려 ‘흑화(黑化)’해 버렸다. 특유의 기지와 재능을 말초적·자극적 도발에 낭비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래선 큰 정치인이 되기 힘들다. 엊그제(27일) TV토론에서 나온 여성 신체 관련 발언은 자신의 지지층인 ‘이대남’(20대 남성)에게 갇힌 패착이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이다. 사실 이 문장의 진정한 의미는 그다음 구절이 있어야 완성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아브락사스(Abraxas)는 고대 그리스와 중근동 지역에서 선과 악, 빛과 어둠을 통합한 존재다.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모순되거나 이질적인 존재를 내적으로 통합하고 일체화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 과정이 없으면 영원히 어린아이에 머무르거나 자신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대통령이 탈레반과도 같은 강경 지지 세력에 의존하는 자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성장할 수 없다. 국민도, 대통령 본인도 불행해진다.





이현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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