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소녀가 톰 크루즈 꺾었다...코믹액션 활극 '하이파이브'

초능력 태권 소녀의 발차기가 톰 크루즈의 스펙터클 액션을 꺾었다.

코믹 액션 영화 '하이파이브'가 개봉 첫날인 지난달 30일 7만 관객을 모으며,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6만8000명)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이튿날엔 16만 관객을 모은 '미션 임파서블'에 1위 자리를 내줬지만, 관객수 차이는 1만 명에 불과하다.

'하이파이브'는 '과속스캔들'(2008), '써니'(2011)의 강형철(51) 감독이 '스윙 키즈'(2018)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초인으로부터 장기 이식을 받은 다섯 명의 평범한 인물들이 자신들의 초능력을 빼앗으려는 악당에 맞서 싸우는 내용이다. 만화적 색채로 풀어낸 한국적 히어로물로, 강 감독 특유의 유쾌하고 감각적인 연출, 대사의 리듬감이 빛을 발한다.

지난 달 29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강 감독은 "'초인의 장기를 기증 받아 초능력이 생긴 사람들 얘기를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라는 동료 스태프의 말 한 마디가 영화의 시작이었다"며 "엄청난 스피드로 언덕을 뛰어 올라가는 초능력 소녀를 주인공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엄청난 신체 능력을 갖게 된 태권 소녀 완서(이재인, 심장 이식), 입김으로 강풍을 일으키는 시나리오 작가 지성(안재홍, 폐 이식), 전자파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백수 기동(유아인, 각막 이식),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공장 작업반장 약선(김희원, 간 이식), 자신의 초능력이 뭔지 모르는 요구르트 판매원 선녀(라미란, 신장 이식) 등 주인공들은 여느 수퍼히어로와는 거리가 멀다. 지구를 지키는 등의 대단한 일을 하지 않는다.

"초능력으로 주변 사람들을 돕는 동네 사람들 같은 히어로"라는 강 감독의 설명대로, 이들은 폐지 줍는 할머니의 수레를 입김으로 밀어주거나, 횡단보도 대기 시간을 연장시켜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돕는다.

친구도 없고, 되는 일도 없고, 한때 건강도 잃었던 비주류 인간들이지만, 췌장 이식으로 초능력을 갖게 된 사이비 교주 영춘(신구)의 사악한 음모에 맞설 땐, 히어로 다운 면모를 과시한다. 서로 티격태격하고 갈등을 빚다가 진정한 원팀을 이뤄 함께 싸우는 과정이 코믹하면서 유쾌하게 그려진다.

특히 다섯 명의 주인공이 요구르트 카트에 올라타 도망가는 '카트 체이싱' 신은 추억의 올드팝과 어우러지며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약탈적인 방법으로 젊음과 괴력을 갖게 된 영춘(박진영)과 완서가 맞붙는 액션 신은 '무빙'(2023, 디즈니플러스)을 방불케 한다.

처음부터 '만화 같은 오락 영화'를 찍고 싶었다는 강 감독은 "영춘 캐릭터는 남의 능력을 빨아들이는 무협 만화 악당에서 차용한 것"이라며 "췌장 기능과 관련됐다기보다는 영화적 허용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해빙'(2017) 이후 오랜만에 악역을 맡은 배우 신구는 영생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힌 영춘 역을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강 감독은 "현장에서 모니터로 선생님의 연기를 보면서 감탄만 했다"고 돌아봤다.

강 감독은 '과속스캔들'의 박보영, '써니'의 심은경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이재인이란 원석 같은 배우를 발굴해냈다. 그는 "이재인이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영화 '사바하') 수상 소감을 말하는 걸 객석에서 지켜봤는데 너무 매력적이었다"며 "그의 성장을 관심 갖고 지켜봤는데, 운명처럼 함께 작업할 기회가 닿았다"고 말했다. 완서란 캐릭터 명은 자신이 존경하는 박완서 작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2021년 촬영을 마친 영화가 4년 만에 관객을 만나게 된 건, 유아인의 마약 스캔들 때문이다. 얼마 전 유아인으로부터 사과를 받았다는 강 감독은 "영화는 많은 스태프와 배우들이 인생의 한 때와 재능을 바쳐 만든 작업물"이라며 "영화 외적인 이유로 건드리면 다른 배우들의 빛나는 순간이 퇴색되고 관객에 대한 실례일 것 같아 (유아인 분량을) 편집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주인공들은 악당에 맞서 함께 싸우면서, 각자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초능력자는 아니지만, 딸 완서를 위해 무엇이든 하는 K-아빠 종민(오정세)의 부성애도 관객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강 감독은 "현실에서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초능력보다 더 위대한 힘은 주변의 친구, 가족애에서 나온다고 생각해 그런 설정으로 영화를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애초에 이들에게 장기를 기증한 '초인'은 누굴까 라는 궁금증이 남는다. 장기 기증자에 대해 생각해 둔 게 많다는 강 감독은 "고대 신화적 인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번 영화가 흥행할 경우 프리퀄 등을 구상할 수도 있다"며 후속 편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그는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기분이 좋아져서 다 함께 하이파이브를 했으면 좋겠다"면서 '비디오 가게' 같은 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어릴 때 비디오 가게에서 재미난 영화를 빌려 집으로 가던 길이 너무 행복했어요. 다양한 장르의 재미있는 영화로 가득한 비디오 가게 같은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극장을 사랑하는 감독으로서 관객을 극장으로 모실 수 있는 영화를 계속 만들 생각입니다."



정현목([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