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23년 전 그 토론의 품격

수도권 과밀화 해소를 주제로 한 이회창과 노무현의 논쟁을 담은 쇼츠는 조회 수 1000만회가 넘었다. 2025년 대선의 현안이기도 한 정책 토론을 23년 전 후보들의 영상으로 대리만족해야 하는 유권자들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16대 대선 토론회 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다. [중앙포토]](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6/02/838afe52-86a1-4324-a398-32b1874fd22d.jpg)
궁금증이 생겼다. 정말 그 시절 토론은 정책 위주의 네거티브 없는 건설적인 토론이었을까. 1분짜리 쇼츠 대신 2시간짜리 풀 버전을 찾아봤다. 부끄러움은 지켜보는 사람의 몫이었던 최근 토론 수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당시 토론에서도 상대에게 ‘딜’을 넣기 위한 말 폭탄이 꽤 많이 오갔다.
“한나라당은 친일당·재벌당·부패당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이회창 후보는 왜 대통령 하려고 하느냐”(권영길)는 프레임 씌우기도 있었고, 대선을 앞두고 불거진 김대중 정부의 국가정보원 불법 도청 의혹에 대해 이회창이 문제를 제기하자 “한나라당은 공작기관에서 만든 자료로 매번 상대 후보 공격하지 않느냐”(노무현)는 피장파장의 오류도 보였다. 원본이 편집본만큼 고상하지만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과거와 현재의 결정적 차이점이 있었다. 당시 후보들은 토론 중에 고개를 숙일 줄 알았다. 이회창은 “친일당·재벌당·부패당 후보가 왜 대선 나왔느냐”는 권영길의 질문에 “저희 당이 그런 말을 듣는다면 후보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노무현은 “한나라당이 부패 원조 당이라면 민주당은 부패 신장개업 당”(권영길)이라는 지적에 “이제 부패 사업 폐업하고 사장 바꿔서 새로운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한순간이라도 밀리면 끝장’이라는 태세로 험악한 말을 쏟아내다 토론이 끝나고 비판이 빗발친 뒤에야 “불편하셨다면 죄송하다”는 말로 눙치는 요즘 정국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겨우 사과가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제때 사과할 줄 모르는 대통령의 오만과 몰락을 지난 3년간 고통스럽게 지켜봤다.
2025년의 유권자들이 2002년 대선 토론에서 높게 평가한 모습은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려는 태도였다. 품격은 겸허에서 나온다.
박건([email protected])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