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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새 정부의 ‘첫 100일’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새 정부의 ‘첫 100일(First 100 days)’이란 말을 처음 쓴 이는 미국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1933년 3월 4일 대통령에 취임한 루스벨트는 7월 25일 라디오 연설에서 첫 100일이란 용어를 선보였다. 첫 100일은 새로운 리더십에 기초해 핵심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국정 주도권을 확립해가는 결정적 시간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첫 100일 동안 대공황을 극복하고 경제 활력을 회복하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뉴딜’이었다. 이후 첫 100일은 미국에서 새 정부의 성패를 가늠하는 상징을 이뤘다.

새 정부 성패 가늠하는 상징 용어
앞선 정부들의 경험을 교훈 삼아
민주적이고 유능한 리더십 기대
혁신경제와 국민통합 추구해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2017년 8월 17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최근 우리나라의 첫 100일은 어떠했을까. 먼저 문재인 정부 사례.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9일 대선을 치르자마자 5월 10일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했다. 문재인 정부 첫 100일의 키워드는 적폐청산, 소득주도성장, 한반도 평화 구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의 권위적 리더십과 대비되는 소통과 감성의 리더십을 앞세웠고, 그 결과 집권 100일을 맞이해 대통령 지지율이 70%를 웃돌았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은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북·미간의 군사적 긴장 제고는 외교정책을 시험대에 올려놨다.

이어 윤석열 정부 사례. 2022년 3월 9일 대선에서 승리한 윤석열 후보는 인수위를 거쳐 5월 10일 윤석열 정부를 출범시켰다. 윤석열 정부 첫 100일의 키워드는 ‘용산 시대’, ‘도어스테핑’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소통, 공정과 상식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80일 만에 30%를 밑돌았고, 그 결과 윤석열 정부는 때 이른 위기와 마주했다. 인사 논란, 독선적인 국정, 집권 여당의 내부 갈등 등이 원인이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리더십의 위기였고, 이 위기의 리더십은 결국 2024년 12월 3일 시대역행적 비상계엄으로 귀결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2년 8월 1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첫 공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내가 첫 100일을 주목하는 것은 내일 6월 3일 대선 결과가 나오자마자 모레 6월 4일부터 새 정부의 첫 100일이 시작하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비약은 없다. 앞선 정부들의 첫 100일은 새 정부의 출범에 작지 않은 함의를 제공한다. 세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 리더십의 중요성이다. 윤석열 정부 첫 100일 실패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오만과 불통의 리더십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바람직한 대통령 리더십은 국제정치학자 조지프 나이가 제시한 ‘복합적 리더십’이다. 나이는 성공적인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기술이 요구된다고 역설했다. 정서적 공감 능력을 갖추고 비전을 제시하며 소통을 중시하는 소프트파워 기술, 조직 관리 역량과 냉철한 정치력을 발휘하는 하드파워 기술, 소프트파워와 하드파워를 결합할 수 있는 스마트파워 기술이 그것이다. 21세기 현재의 ‘지구적 스트롱맨 시대’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타협과 절제의 민주적 리더십에 문제 해결을 위한 유능한 리더십이 결합해야 한다.

둘째, 새로운 경제비전이다. 여기에는 문재인 정부 첫 100일의 경험이 교훈을 안겨줄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주요 정책 추진과 인수위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운영을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국정 어젠다를 충분히 검토하기 어려웠다. 설익은 소득주도성장론은 대표 사례였다. 새 정부는 당장 민생 회복에서 통상 문제까지 긴급히 대처해야 하고, 주요 대선 후보들이 모두 공약으로 내건 인공지능(AI) 등 혁신경제의 집중적인 육성과 투자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실, 내각, 인수위 격 위원회 간에 유기적인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셋째, 국민통합의 대한민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이러한 선언과 약속은 결국 구두선에 그쳤다. 정치 양극화 시대에 민주적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중요하다. 반대 세력의 포용, 협치의 제도화, 시민사회와의 소통 강화가 그것이다. 새 정부를 이끌 새 대통령은 다른 후보들에게 표를 던진 국민까지 모두 끌어안는 통합의 국정을 추진해야 한다.

다시 뉴딜로 돌아가면, 루스벨트 정부의 첫 100일은 오늘날의 미국을 만든 정신적·정책적 토대의 하나였다. 역사학자 앨런 브링클리는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에서 뉴딜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뉴딜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 개인의 운명을 우연이나 규제되지 않은 시장의 작동에 완전히 맡겨놓을 필요가 없다고 설득한 일일 것이다.”

정부의 존재 이유는 뭔가. 뜻밖의 우연, 불확실한 경제, 불안한 사회 속에 내던져진 국민 개개인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어느 나라든 정부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역할이다. 개인의 창의성과 시장의 활력을 존중하되 우연과 불확실성과 불안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유능하고 활기찬 새 정부의 ‘첫 100일’을 기다리는 이, 나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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