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남강에 배우들이 ‘풍덩’…백년 극단 꿈꾸는 이 남자의 연출론
진주 남강에 띄운 수상객석은 사람들 발걸음이 거칠기라도 하면 출렁였다. 공병부대가 수상 작전 때 주로 사용하는 고무 폰툰(pontoon) 4700여개를 엮어 만든 600석 임시 객석이다. 강물을 사이에 두고 진주성 아래 의암(義巖)을 낀 야외무대가 펼쳐졌다. 너비 52m짜리 너럭바위 위에서 왜병과 시민들 간 전투가 전개된 뒤 하얀 소복을 입은 논개의 절규. “이제야 저 푸른 강물이 피눈물로 보이느냐.” 그가 왜장을 안고 뛰어내리자 ‘풍덩’ 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일었다. 밤하늘 아래 촉석루를 배경으로 110명 배우·코러스의 의연한 합창이 이어졌다.

지난달 31일 경남 진주성 외곽 야외무대에서 막을 내린 실경역사뮤지컬 ‘의기 논개’의 마지막 장면이다. 임진왜란 당시 기생 논개가 진주성을 침략한 왜장을 껴안고 뛰어내렸다는 그곳에서 역사적 순간을 실제처럼 재현했다. 5월 한달간 총 10회 공연(관람료 1만원)에 5400여명이 몰렸고(예매율 91%), 관람 후 응답자 조사에서 98%가 ‘만족’ 이상을 답했다. 관람객 셋 중 한명(35%)은 진주시 외부에서 왔고 2회 이상 N차 관람객도 11.5%에 달했다.
의암에서 논개 투신 장면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이 밖에도 진주검무로 재현하는 전투 장면과 대규모 폭죽 특수효과 등 야외 특성을 살린 연출이 돋보인다. 게다가 무대에 서는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시민배우·시민합창단으로 전문 배우가 아니다. 이 같은 110명 ‘연합부대’를 지휘하는 이가 고능석 연출(57·극단현장 대표)이다. 대학 졸업 후 극단현장에 배우로 입단해 한때 스스로도 왜장 역할을 하며 남강에 몸을 던지기도 한 그는 지난 10년간 연출자로서 ‘의기 논개’를 업그레이드 해왔다. 지난달 23일 그를 만났다.

Q : - 주연배우들의 투신 장면을 포함해 바위 무대 난도가 높아보인다.
A : “사실 야외무대는 실내보다 10배는 더 어렵다. 공연 연습보다 바위 물때 청소가 더 오래 걸릴 정도다. 투신 장면엔 전문 잠수사가 대기하고 있고 배우들이 안전하게 헤엄쳐 나오도록 유도한다. 실제 역사 현장에서 공연한다는 게 국내에선 전례가 드물고 관객 역시 역사적 체험에 대한 각별함이 있어서 앞으로도 실내 극장에 가져갈 생각은 없다. 꼭 이곳에 와야 볼 수 있는 작품이란 점에서 진주 관광상품 패키지로 인지도를 쌓고 있다.”(※‘의기 논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 지역대표예술단체 지원사업’ 공모에 선정돼 진주시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다.)

Q : - 애초엔 뮤지컬이 아니었다는데 스케일을 점점 키웠다.
A : “원래는 매년 5월 초 진주 논개제의 부대 행사로 진행된 소규모 행위극이었다. 20여년전 우리 극단이 연기 지도를 맡으면서 점차 정극으로 발전시켰고 2022년에 지금 같은 1시간짜리 야외 뮤지컬로 키웠다. 이듬해부터 논개제 외에도 5월 하순에 별도 공연을 올리면서 독립 브랜드가 됐다. 무엇보다 시민극단과 협업해 이뤄진다. 예컨대 코러스 참여자 전원은 별개 생업이 있는데 퇴근 후에 연습해 합을 맞춘다. 왜장 부관 중 한명은 건설 현장관리자인데, 9년째 출연 중이다.”
Q : - 20여년간 해오면서 지역민과 쌓아온 역사도 있겠다.
A : “초창기 때 아역배우로 출연했다가 그새 성인이 돼 우리 극단을 후원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님과 봤던 공연을 아이 데리고 와서 본다는 N차 관람객도 있다. 지역에서도 품질 좋은 공연을 볼 수 있고 우리 아이가 커서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있단 걸 보여주고 싶다.”

Q : - 지역에서 연극하는 것의 한계를 느끼진 않나.
A : “주요 연극상이 대체로 서울 공연 위주로 주어져서 기회가 없을 때가 많다. 한때는 잘 하고 싶은데 인정을 못 받는다는 좌절감에 우울증도 왔지만 이젠 꾸준히 하다보면 알아줄 거란 믿음이 있다. 오히려 지역 극단이라 특색을 살릴 수도 있다. 예컨대 ‘진주 정신’이랄까, 임진왜란 때 의병이 많았던 지역색이 면면히 이어져온 흐름이 있다. ‘의기 논개’도 그런 의인 정신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진주 형평운동(일종의 신분해방 운동)을 소재로 마당극(‘수무바다 흰고무래’, 2021년)을 만들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선 ‘성공’ 관념이 획일화·중앙화돼 있는데 우리 같은 극단이 100년 갈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 “1995년 극단 전세자금이 부족해 선생님을 찾아갔는데 조건없이 3000만원을 선뜻 내주셨다. 나중에 갚으려 하니 ‘이미 준 것이니 필요 없다. 지역의 문화예술이 발전해야 한다’며 사양하셨다. 요즘도 매년 명절 단원들과 찾아뵙는다. 이런 흐름이 진주 정신을 이어가게 하지 않을까.” "



극단현장의 다음 공연 작품은 어린이 마당극 ‘피노기오’(11월8~23일 진주 현장아트홀)다. ‘정크, 클라운’ ‘나는 이렇게 들었다’ ‘카툰마임쇼’ ‘반추’ 등의 지역 순회공연도 이어간다.
강혜란.오욱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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