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좀 바로 섰으면"…새벽 6시부터 '승룡이네' 사람 붐빈 사연

승룡이네 첫 투표자는 10년째 강동구에 거주중인 백승문(75)씨였다. 백씨는 “3년 만에 치러지는 조기대선인데 앞으로 나라가 좀 바로 섰으면 하는 마음으로 투표했다”며 “초등학교, 유치원 다니는 손자 손녀가 바른 미래에 살 수 있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백씨에게 선거사무원들은 엄치를 치켜올리고 “오늘 1등이에요”라고 말했다. 백씨는 수줍게 웃고 손 인사를 한 후 집으로 향했다.

1년 전 결혼하며 강동구 아파트에 전세살이를 시작한 장석준(36)씨도 승룡이네에서 투표를 마쳤다. 장씨는 “내집마련이 어렵지 않은 나라, 자녀 키우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줄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갓 돌이 된 아들을 데리고 투표소에 나선 김모(37)씨는 “아이는 절대 기억을 못 하겠지만 아빠 품에 안겨서 투표장 왔던 추억이 있었다는 걸 알고 살아가면 좋겠다”며 “아이와 가족을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일찍 투표하고 날씨 좋으니 한강 공원으로 나들이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색 인증샷도 눈에 띄었다. 강동구에 거주하는 신모(47)씨네 네 식구는 아침 일찍 승룡이네에서 투표를 마치고 인증샷을 찍었다. ‘한화우승’이라고 적힌 종이에 기표를 한 뒤 인증샷을 찍는 방식이다. 신씨는 “네이버에 ‘야구 구단별 투표 인증 용지’를 검색해 뽑아왔다”며 “인증샷을 찍고 인스타에 올리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투표 인증 용지에 기표하고 찍은 ‘인증샷’이 연이어 올라왔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작가 ‘김타니’는 곧 출시 예정인 강아지 캐릭터 ‘쿤이’를 넣은 투표 인증 스티커를 제작했다. 김씨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대통령 선거에 관심을 가지고 표를 행사하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라며 “선거를 더 즐거운 경험으로 만들어주고 싶어 스티커를 제작했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에 사는 한 4인 가족은 각자 관심사를 담은 투표 인증 종이를 준비했다. 음악을 전공하는 20대 아들은 ‘투표도 ROCK(락)이다’고 적힌 종이를, 아버지는 자신이 응원하는 프로야구팀 LG트윈스의 경기 사진이 담긴 용지를 준비했다. 어머니인 A씨는 두 아들이 고래·해파리를 그려준 종이를 챙겼다. 이외에도 중고거래 앱 ‘당근’ 등에는 투표 인증 용지를 무료로 나눠주겠다는 이들이 속속 등장했다.
2030세대 밀집 거주 지역인 서울 관악구 대학동 투표소에도 아침 일찍 투표소를 찾은 청년들이 눈에 띄었다. 지난달부터 보안업체에서 일하고 있다는 지모(38)씨는 “현재 비정규직인데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도 문제고, 회사를 계속 옮겨야 해서 신경이 쓰인다. 직장 안정성이 요즘 가장 큰 관심사”라고 말했다.

요식업에 종사하는 구본(27)씨는 “유튜브 쇼츠에서 대선 토론 요약을 보다가 ‘코끼리 키우시냐’는 이준석 후보 발언의 맥락이 궁금해서 검색해봤다”며 “유튜브 쇼츠 덕에 이번엔 정책도 꼼꼼히 살펴봤다. 젊은 세대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끄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에서 살다 직장 때문에 서울로 이사온 구씨는 행복주택 정책에 관심이 많다. 구씨는 “서울에 오래 사는 게 행복주택 입주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사했다”며 “행복주택 정책 홍보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건설업에 종사하다 3주 전부터 휴직 중인 백찬현(27)씨는 “최근 경기 상황이 안 좋아 일자리를 잃게 됐다”며 “직장인 입장에서 일자리가 많아질 수 있게 물가 안정이 빨리 실현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를 졸업하고 IT 업계에 종사 중인 양모(28)씨는 “현직에서 보면 AI 분야가 큰 미래 산업인데 공부하기도 어렵고 투자도 많이 필요한 분야”라며 “미국처럼 과감한 인센티브가 어려운 환경인 만큼 정부에서 인재 양성을 위해 적극 나서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전 투표에 대한 신뢰가 없어 일부러 본투표날을 기다렸다는 이들도 있었다. 서울 관악구 삼성동에 거주하는 양모(68)씨는 “사전투표가 워낙 말이 많아서 출근 전에 일찍 투표소를 찾았다”며 “선거관리위원회가 불신을 자초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신혜연.김성진.박종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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