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의 마음 읽기] 불안

여덟 번의 대선 치르는 동안
승률은 반반, 좋은 세상은 아직
아홉 번째 투표 불안불안했다
승률은 반반, 좋은 세상은 아직
아홉 번째 투표 불안불안했다

그동안 여덟 번의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다. 승률은 반이었다.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되면 기분이 좋았고 그렇지 않으면 우울했다. 나만 그런 감정이 든 게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선거가 끝나면 광장을 떠나 자신의 일터로 돌아와 생업에 종사했다. 뉴스에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거나 묵묵히 술잔을 비웠다. 나 역시 좋은 세상이 되길 바라며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소설을 썼다. 저녁이면 도서관을 나와 시장·양궁장·화장장·폐차장 입구를 지나 집에 도착했다. 탁구장에 가서 땀을 흘렸다. 결혼식장보다 장례식장에 앉아 있는 날들이 더 많아졌다. 어느 순간부터 휴대폰에 도착한 문자나 파일을 의심하는 버릇도 생겨났다. 깜박 잊고 약을 챙겨 먹지 않은 날은 왠지 불안했다. 평소보다 가슴이 심하게 벌렁거리면 우황청심환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에 빠졌다. 오랜만에 지인이 전화를 걸어와 밥과 술을 먹자고 청하면 계산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잔머리를 굴렸다. 광장은 멀리 있고 일터는 가까이 있지만 생각한 것만큼 일의 진척이나 성과가 따라오진 않았다. 연초에 보았던 토정비결은 그 내용을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여덟 명의 대통령이 지나가는 동안 나도 어디인가를 매일 지나가고 있었다. 지나가는 것인지 조금씩 지워지는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다시 옛날로 돌아가 1988년 우리는 동해안 최북단 금강산 건너편 휴전선에서 졸음을 쫓고 있었다. 바깥세상은 서울올림픽으로 들썩거렸다. 그리고 89년 임수경이 방북했다. 금강산 봉우리마다 설치된 스피커에서 “조국은 하나다”라고 외치는 임수경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휴전선의 밤을 지나갔다. 남쪽에선 이선희의 노래를 계속 틀었다. 가끔 비무장지대에 서식하는 뿔 달린 산양이 철책선으로 다가와 깜짝 놀라기도 했다. 남한에서 멸종되었다고 알려진 산양은 아슬아슬한 절벽에서 살았는데 움직일 때마다 돌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덕에 졸지 않고 밤을 건너갔다. 하지만 돌 구르는 소리는 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해 겨울 산비탈의 철책까지 덮어버리는 눈이 내렸는데 눈이 얼자 먹이를 찾아 유유히 철책을 넘어오는 산양들을 대공초소에서 보기도 했다. 그렇게 80년대가 저물고 있었다.
지난 12월부터 우리의 광장은 불안했고 일터도 불안했다. 마음은 늘 두근거렸다. 휴대폰 알림음이 울리면 먼저 가슴부터 덜컥 내려앉았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어제는 내 인생의 아홉 번째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를 했다. 누가 될까. 그는 또 어떤 사람일까.
김도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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