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새 대통령, 취임사대로 해달라

“여든 하고 일곱 해 전 우리 조상들은 이 대륙에 자유를 바탕으로 새로운 나라를 세웠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됐다는 명제에 헌신했습니다”로 시작해, “(우리에게 남겨진 일은) 이 나라가 하느님 아래에서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이루는 것 그리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로 끝났다.
앞서 두 시간 동안 연설한 이가 “당신처럼 두 시간 아닌 2분 안에 모든 생각을 담아낼 수 있었다면 기뻤을 것”이라고 했지만, 당사자는 ‘망작’이 아니었다는 걸 위안 삼았다. 하긴 ‘멍청하고 평범한 일용잡부들이나 할 만한 연설’(시카고 타임스)이라고 한 곳도 있었다.
정치 말로 하지만 말만으로 안 돼
원칙·가치·결단 담겨야 위대해져
취임사도 마찬가지…실천이 중요
원칙·가치·결단 담겨야 위대해져
취임사도 마찬가지…실천이 중요
사실 우리에게도 연설 자체만 보면 명문인 게 없지 않다. 대통령 탄핵이란 극심한 혼란을 걷어내고 대통령이 된 문재인의 취임사가 그중 하나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란 문장이 널리 알려졌지만 이런 대목도 있다.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지만 말로만 하는 건 아니다. 행동이, 결과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존 F 케네디의 스피치라이터로 유명한 테드 소렌슨은 “제아무리 고상하고 웅변적이어도 연설은 연설일 뿐이다. 말만 하고 행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면”이라면서 이렇게 정리했다. “위대한 연설이 위대한 이유는 전달되는 강력한 사상·원칙·가치 그리고 결단 때문이다. 사상이 위대하다면 그 말이 평범하더라도 연설은 위대해진다. 말이 아무리 웅장하고 아름답고 유창하더라도 그 사상이 평범하거나 비어 있거나 악의적이라면 결코 위대한 연설이 될 수 없다.” 문 전 대통령의 연설은 후자였다면 링컨의 연설은 전자였다.
오늘 새 대통령이 나온다. 약식이라곤 하나 취임식에서 자신의 5년을 그려 보일 것이다. 아름다운 약속의 말도 많을 것이다. 종국에 중요한 건 그 말에 담긴 정신이고 실천력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선의로 시작한 대통령도 이내 대통령직 자체가 갖는 모순을 마주하면서 흑화하곤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을 빌리면 대통령직은 ‘권력투쟁의 당사자이자 통합의 수임자, 전체의 대변자’로서 ‘복잡한 인과관계, 복잡한 갈등 관계 속에서 목표를 추구해 나가야’ 하는 ‘위험한 직업’이다.
그럼에도 이번 대통령은 달랐으면 한다. 취임사대로만 해달라. 우리도 위대한 대통령 연설을 갖게 될 것이다.
고정애([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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