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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새 정부에 바라는 경제정책 방향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 경제는 현재 경기둔화와 구조적 저성장의 이중 국면에 진입해 있다. 교과서적으로 보자면 단기적으로는 총수요 관리정책을 통해 침체를 완화하고, 장기적으로는 구조개혁을 통해 성장잠재력과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20여 년간 한국 경제는 정석적 접근보다는 주로 단기적 경기부양에 의존해 위기를 넘겨왔다. 제대로 된 체질 개선 없이도 경제가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외생적 호운(好運)이 있었다. 특히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이후 대중국 수출이 총수요를 강하게 견인하면서 구조개혁의 필요성이 일시적으로 가려졌다. 그러나 이제 그 행운도 유효기간이 다해가고 있다.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0.8% 내외로 전망하는 것은 일시적 충격의 결과라기보다 외생적 도움이 없을 때 한국경제의 실제 체력을 보여주는 신호로 읽어야 한다.

단기 침체 완화, 장기 구조개혁 필요
신용확대 등 부동산 자극 정책 그만
SOC 중심 경기부양책 유혹 끊어야
구조전환 위한 전략적 투자 나오길

실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이유는 그동안 단기부양책으로 건설투자와 신용확대를 진통제 놓듯이 지속해서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가계부채 누증, 소비 여력 감소, 수도권 부동산 가격 폭등, 주거비 부담 증대와 결혼·출산 기피, 양극화 심화다. 그뿐만 아니라 부동산 호황기에 과잉공급된 지방 부동산은 미분양과 부동산PF 부실, 상호금융권 건전성 훼손이라는 형태로 여전히 시장에 남아 있다. 근시안적인 단기부양이 오히려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부동산 대출 잔액은 약 1933조원으로 전체 민간신용의 절반에 해당한다. 2014년 이후 매년 100조원 이상 증가해 2013년 말 대비 2.3배로 늘어났다. 10년 동안 매년 100조원씩 제한된 시장에 돈을 쏟아붓는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것은 당연하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때가 됐다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나올 때마다 반복해 등장하는 부동산부양정책, 금융규제완화, 정책금융과 보증공급 덕분에 우리는 부동산이 가장 좋은 투자라는 경험적 믿음을 갖게 되었다. 청년들 사이에서 ‘한국에 GPT는 없지만 APT가 있다’는 자조적 인식이 퍼지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더욱 염려스러운 점은 이미 시장에서 추가적인 금리 인하와 추경에 대한 기대감, 과거 진보정권에서 경험한 부동산급등에 대한 학습효과, 대출 막차 심리까지 더해져 부동산 가격이 불안하게 꿈틀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SOC투자도 단골 경기부양수단이다. 그러나 일본의 실패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 일본 정부는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자, 1992년부터 2000년까지 총 9차례에 걸쳐 약 124조 엔 규모의 경기부양 재정지출을 단행했다. 대부분은 도로, 철도, 항만 등 토목 중심의 공공사업에 집중되었다. 이는 ‘지역구 공공사업=표심’이라는 일본 정치의 고착화에 기인한 바가 크다. 세계은행은 1990년대 일본을 토건과잉국가(Overbuilt State)로 언급하며, 정치가 경제적 자원배분을 왜곡한 실패사례로 지목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는 일본의 공공사업투자가 민간 수요 회복과 경제구조 전환에는 효과가 미미했고, 국가채무 누적과 구조적 저성장을 고착화하는 부작용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2000년대 이후 일본 정부도 SOC 중심의 경기부양책이 한계에 부딪혔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투자 방향을 과학기술 R&D 등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따라서 새 정부가 선택해야 할 경제정책 방향은 교과서적으로 분명하다. 첫째,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즉 신용확대와 건설경기부양을 통한 진통제식 총수요관리정책을 멈춘다. 7월 예정된 스트레스 DSR 3단계는 반드시 시행되어야 하며, 지방이라고 해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완화해서는 안 된다. 둘째, 추경은 취약계층과 자영업자 지원과 함께 생산성 향상과 구조 전환을 위한 전략적 투자로 이어져야 한다. 지출의 양이 아니라 질이 성장을 결정짓는다. 경제성이 떨어지는 SOC투자에 추경을 투입하는 것이 낡은 엔진에 기름칠하는 것이라면, R&D투자는 아예 엔진 자체를 업그레이드하는 일이다. 셋째, 기업가정신이 살아날 수 있도록 규제환경을 혁신해야 한다. 신산업 진입을 가로막는 제도적 장벽, 기존 기업의 전환을 어렵게 하는 복잡한 규제 구조를 재설계하여 미래 성장동력을 키워야 한다. 돈을 푸는 것이 아니라, 규제를 푸는 것이 지금 가장 시급하다.

우리 정부가 과거에 단기적 경기부양만 했던 것만은 아니다. FTA 전략은 노무현 정부가 주도하고 이후 모든 정부가 계승·발전시킨 드문 경제정책으로, 한국의 수출경쟁력 제고와 제조업 기반 산업의 글로벌 위상 강화라는 성과를 남겼다. 새 정부 역시 급변하는 세계 경제의 흐름 속에서 시대적 과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산업 구조 전환을 반드시 끌어내야만 한다. 이번 정부의 정책적 선택이 훗날 우리 경제사에서 의미 있는 분기점으로 기억되기를 기대한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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