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기다린 파이어볼러 홍원빈, 시속 154㎞ 강속구로 첫 인사

지난 3일 서울 잠실구장.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투수 홍원빈(25)은 팀이 두산 베어스에 11-2로 크게 앞선 9회말 마운드에 올랐다. 초구를 던지자 전광판에 시속 152㎞가 찍혔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그다음 공은 시속 154㎞였다. 또 환호가 터졌다. KIA가 7년을 기다린 강속구 유망주의 강렬한 프로 데뷔전. 그는 “경기에 집중하느라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구속도 확인하지 못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날 최종 성적은 1이닝 1피안타 1볼넷 1탈삼진 1실점. 첫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냈지만, 첫 등판의 마지막 아웃 카운트는 삼진으로 잡았다. 홍원빈은 “7년간 허투루 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 같아 다행이다. 기다려주신 팬들과 감독님, 코치님, 팀에 모두 감사하다”고 말했다.

홍원빈은 ‘미완의 대기’였다. 2019년 신인 2차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전체 10순위로 KIA 유니폼을 입었다. 키 1ｍ95㎝, 몸무게 101㎏의 건장한 체격, 시속 150㎞를 훌쩍 넘는 강속구. 모든 투수가 부러워할 재능을 타고났다. 그런데 1군 마운드에 서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고교 2학년 때 포수에서 투수로 전향한 터라 제구력을 갖추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줄곧 2군에 머물다 군 복무를 마쳤고, 2023년 시즌 종료 후엔 휴식 대신 호주야구리그에서 뛰며 돌파구를 찾았다.

프로 7년 차인 올 시즌 전에는 자비로 미국의 유명 야구 전문 트레이닝 센터 ‘트레드 애슬레틱스’ 연수를 다녀왔다. 프로야구 최저 연봉(3000만원)을 받는 그가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배수의 진을 쳤다. 그 간절함이 마침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개막 전 시범경기에서 시속 154.4㎞의 강속구를 던져 화제를 모았다. 이범호 KIA 감독도 홍원빈을 유심히 지켜봤다.

마침내 오래 기다린 순간이 왔다. 지난달 30일 수원 KT 위즈전에 앞서 처음으로 프로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 나흘 만인 3일 두산전에서 마지막 투수로 등판했다. 그는 “더그아웃에서나 숙소에서나 내내 ‘빨리 던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며 “첫 등판이 언제일지 마냥 궁금해하기보다, 언제든 나가면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준비하려고 노력했다”고 털어놨다. 이날 잠실구장에는 만원 관중(2만3500명)이 찾았다. 그는 “1군 경기장은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관중의 함성을 생각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정말 많이 했다”며 “그 덕에 긴장을 덜 했다”고 털어놨다.

홍원빈의 오랜 약점은 '볼넷'이다. 올해도 2군 20경기에서 19와 3분의 1이닝 동안 사사구 24개(볼넷 18개, 사구 6개)를 내줬다. 그러나 탈삼진도 17개를 기록하면서 예년보다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늘 제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그에게 KIA 코치진은 "볼넷을 안 주려고 하지 말고, 삼진을 많이 잡겠다는 생각으로 던지라"고 조언했다. 단점을 보완하는 데 집착하기보다 장점을 살리는 데 더 집중하라는 의미다. 홍원빈은 "그 덕에 볼넷을 줬을 때도 흔들리지 않고 '그다음 타자를 잘 상대해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됐다"며 "예전에는 볼넷을 줄 때 터무니없는 공을 많이 던졌다. 지금은 볼넷이 나와도 내 손에 '내 공을 던질 수 있다'는 느낌이 있다. 그러면 흔들리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홍원빈은 데뷔전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은 뒤 3루 쪽 관중석을 바라보며 잠시 감회에 젖었다. 그쪽 어딘가에 막내의 기념비적인 순간을 함께하러 온 가족이 앉아 있었다. 그는 “집이 서울이라 마침 부모님과 형이 다 잠실에 경기를 보러 왔다. 11살 때 야구를 시작한 뒤 지금까지 지켜봐 주고 기다려준 부모님께 가장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제 첫발을 내디딘 그의 1차 목표는 KIA 불펜 필승조의 일원이 되는 것. 그는 “1군에 올라와 필승조 형들이 던지는 걸 보며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갈 길이 멀지만, 언젠가는 나도 팀 승리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경기에 나가는 투수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홍원빈이 1군에서 처음 받은 모자챙 안쪽에는 전직 메이저리거 요르다노 벤추라(도미니카공화국)의 이름과 등 번호 ‘30’이 적혀 있다. 빅리그에서 최고 시속 164㎞를 찍은 광속구 투수 벤추라는 2017년 25세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홍원빈은 “마운드에서의 행동, 투구 스타일 등을 본받고 싶은 투수였다. 내 등 번호도 벤추라와 같은 30번으로 선택했다”며 “모자를 쓸 때마다 ‘내가 이 투수가 된다’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오르려고 한다”고 말했다.



배영은([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