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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우린 물에 빠졌다” 선관위 상임위원의 절규

강찬호 논설위원
6·3 대선에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유권자가 배부받은 투표지를 소지한 채 점심 먹고 돌아와 투표해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고, 선거사무원이 남편 명의로 대리투표하다 적발됐는가 하면 사전투표함에서 지난해 치러진 총선 투표용지가 발견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선관위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부정선거’다. 그러나 이 말이 활개 치게 만들어준 일등공신이 바로 선관위다. 선거 때마다 투개표 부실관리로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양산해왔으니 결과에 불복하는 이들이 ‘부정선거’를 외치기 딱 좋은 여건을 스스로 조성해준 것 아닌가.

선거관리보다 의원 응대에 집중
투개표 책임진 하급조직은 찬밥
김필곤 상임위원, 퇴임하며 자성

3500여 사전투표소와 1만4000여 본투표소에서 유권자가 마주치는 선거관리원들은 선관위 직원이 아니다. 투표소 현장은 선관위 하급조직인 읍면동 선관위가 관리하는데, 이 조직은 사실상 실체가 없다. 선관위 직원은 찾을 수 없고 지자체 공무원들이 간사·서기란 이름으로 일시 위촉돼 일하기 때문이다. 선거 업무를 모르는 지방 공무원들이 투개표를 관리하니 ‘소쿠리 투표’ 같은 사고가 터지는 것이다.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뉴스1
그럼 선관위는 무엇하느냐고? ‘국회 대응’이란 명분 아래 국회의원들 질의에 응대하느라 바쁘다. “정치자금은 몇만 원까지 쓸 수 있나, 주민들 만나 무슨 얘기 하면 선거법에 걸리느냐 같은 사소한 문제까지 일일이 물어옵니다. 중앙 선관위 사무처 역량의 3분의 2가 이런 ‘의원님 질문’ 응대에 소진됩니다. 선관위 핵심 인력이 의원들의 법률 보좌진이나 로펌 역할을 해온 셈이죠. 본업은 뒷전이고 국회 응대에 정신이 팔려있으니 선거 때 사고가 안 나면 이상한 조직이 된 겁니다.” 전직 선관위 고위 관계자의 한탄이다.

국회의원들 가운데는 법조인이 많다. 선거법을 모를 리 없는 이들이 선관위에 깨알같이 질문을 해대는 이유는 간단하다. 본인 활동에 시비가 붙을 때마다 선관위의 ‘답변’을 내세워 ‘면죄부’로 쓰기 위해서다. 의원들이야 좋겠지만, 선관위가 이렇게 업무 역량의 핵심을 대 국회 서비스에 집중하면 선거 관리는 허술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중앙선관위에서 가장 끗발 있는 조직은 선거과가 아니라 법제국 해석과가 된 지 오래다. 법제국이 승진의 핵심 통로가 되면서 전국의 선관위 직원들은 과천 중앙선관위에 오려고 줄을 선다. 가족 없이 홀몸으로 과천 청사에서 5~6년씩 근무하는 기러기 직원들이 부지기수인 이유다. 이러다 보니 투개표 실무를 책임지는 일선 시군구 선관위는 인사 점수가 낮아 밀려난 인력으로 채워진다. ‘의원 응대’를 하는 직원들은 출세 가도를 달리고 본업인 선거관리를 맡은 직원들은 찬밥 대우를 받는 조직은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게다가 실제 투개표 업무는 선관위 직원이 아닌 지자체 ‘알바’ 공무원들이 맡으니 투표지 반출·대리 투표 같은 사고들이 터지는 것이다.

선관위가 ‘의원 대응’에 집중하면 생기는 폐해는 또 있다. 직원들이 의원들과 안면을 익히면서 인사 청탁과 봐주기식 단속 같은 ‘뒷거래’ 우려가 커진다. 선거철엔 선관위가 의원들의 ‘저승사자’가 되지만, 인사철엔 의원들이 선관위 고위층에 힘을 쓸 수 있는 ‘갑’의 위치가 되니 이런 주고받기식 비리가 횡행할 토양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만큼 선관위는 이제라도 국회 대응팀을 해체하는 한편, 투개표를 책임지는 지방 선관위에 엘리트 인력을 파견하고 이들의 승진을 보장해 본업이 대우받는 조직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허울뿐인 선관위 산하 선거연수원에 능력 있는 교수진을 충원해 직원들에게 선거법을 제대로 교육하는 것도 절실하다.

대법관이 겸임해온 선관위원장직의 상근화도 시급하다. 한 달에 한 번 선관위에 들러 회의만 하고 대법원으로 돌아가는 위원장이 어떻게 직원 3000명, 예산 4000억원의 거대조직을 지휘할 수 있겠는가(이러고 매달 400여 만원의 겸직수당을 받는다). 현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중앙일보 보도로 드러난 고위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과 부실 선거 관리 등 추문이 불거질 때마다 대국민 사과를 거듭해 ‘중앙사과관리위원장’ 이란 비아냥마저 듣고 있다. 이참에 용퇴하고, 새 위원장은 상근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맞다.

지난달 17일 선관위를 떠난 김필곤 상임위원은 퇴임사에서 “우린 물에 빠졌다. 국민의 신뢰란 진주를 찾아야 뭍에 오를 수 있다”며 선관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해 화제가 됐다. 3년간 장관급 상근직으로 일하며 개혁에 전력했던 그는 “지방 선관위에 양질 인력 파견 등 일부 성과를 내긴 했지만, 만성화된 문제점 해소엔 역부족이었다. 미사여구 대신 조직의 개혁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퇴임사를 쓴 이유”라고 했다.





강찬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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