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직접 도발 없지만 재래 전력 체질 강화…안보 해법 난해해져
이번 대선 기간 잠잠한 김정은

#2. 지난해 10월 31일 오전 7시 10분. 북한은 평양 일대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했다. 닷새 뒤인 11월 5일 오전 7시 34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기 6시간여 앞두고 북한은 황북 사리원에서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600㎜ 방사포(KN-25)를 쐈다. 각각 미국 본토와 주한미군 공격용 무기를 꺼내든 것이다.
박근혜·문재인 첫해에 핵실험
지금까지 한·미 대선 때면 도발
넘어진 구축함 금세 바로 세워
북 역량 냉정하게 재평가해야
지금까지 한·미 대선 때면 도발
넘어진 구축함 금세 바로 세워
북 역량 냉정하게 재평가해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5일 공군 1사단을 찾아 전쟁준비를 독려했다. 북한이 미국의 글로벌호크를 본떠 만든 ‘샛별-4형’ 전략무인정찰기가 활주로를 이동하고 있다. [뉴스1]](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6/05/5188d676-f392-492c-86b6-671e5ace048c.jpg)
하지만 선거 캠페인이 한창이던 4월과 5월 김 위원장의 행보를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직접적인 대남 도발과는 거리가 있지만 김 위원장은 지대공·전술 탄도미사일 발사, 조기 경보기와 특수부대훈련·공군 부대 훈련 점검, 공대공 미사일 개발, 신형구축함 진수식, 전차(탱크) 공장 현지지도 등 전방위적이고 동시 다발적인 재래식 무기 챙기기에 나섰다. 나아가 선거를 6일 앞두고 김 위원장은 노동당의 군사정책 최고 결정기구인 중앙군사위원회 확대 회의를 열어 전략·전술적 우세를 확고히 유지하기 위한 군사적 대책을 토의했다. 북한이 한국의 정권 교체기를 맞아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예고한 셈이었다.
김정은 집권 후 한국 대선 네 차례
김 위원장이 2012년 집권한 이후 한국의 정권 교체가 이번이 네 번째다. 북한은 한국에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일단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허니문 기간 없이 남북 관계를 극도의 긴장으로 몰고 간 뒤 상황을 지켜보며 수위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에도 이런 패턴은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틀 뒤 북한은 단거리탄도미사일을 쐈고, 2주 뒤 방한한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이 귀국하자 동해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을 발사하며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압박하는 장면도 연출했다. 이런 기조는 올해 초까지 이어졌다.
앞서 문재인 정부 출범 때도 북한은 중거리미사일인 화성-12형을 비롯해 준장거리(북극성-2형)·중장거리·장거리 등 각종 미사일을 발사했고 급기야 2017년 9월 6차 핵실험을 하며 핵무기 개발 완성을 선언했다. 다음 해 북한은 평창 겨울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고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하는 등 분위기가 급반전됐지만, 한국 대통령의 임기 첫해 긴장 고조 ‘관례’는 예외가 없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임기 시작 13일 전부터 북한이 움직였다. 북한은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에 이어 휴전 협정 백지화 선언과 미사일 발사에 나섰다. 김정일 시대인 이명박 정부 임기 시작 한 달 만인 2008년 3월 28일 북한은 서해 상에서 단거리 미사일을,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닷새 전엔 서해 연평도 인근에서 북방한계선(NLL)에 전투기를 침범시켰고 취임 전날인 2003년 2월 24일 동해로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는 등 한국의 새 정부에 대한 북한의 긴장 조성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았다.
핵에 재래식 무기 얹은 북
이전과 달리 북한이 보이는 최근의 침묵은 오히려 경계 대상이다. 30년을 끌어온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지근한 입장으로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이 재래식 무기 현대화를 통해 실질적인 위협은 오히려 고조되고 있어서다. 북한은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군사력 증강 정책을 채택한 뒤 속속 신형 무기들을 공개하고 있다. 자신들이 생산한 미사일과 방사포 등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보내 실전에 사용한 뒤 성능 보강에 나서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대북제재를 감시하는 다자제재감시팀(MSMT)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산 대전차 로켓인 불새-4를 비롯, 화성-11A·B 등 미사일도 실전에서 사용했고 미사일의 정밀도를 향상시킨 것으로 파악됐다. 러시아는 이런 무기들의 사용 결과를 북한에 전달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은 이를 토대로 성능 개선에 나서고 있다.
MSMT보고서는 또 북한이 900만 발의 포탄과 로켓탄을 러시아에 지원했고, 러시아는 대가로 판치르(Pantsir)급 대공방어 차량 1대를 비롯해 단거리 방공시스템과 전자전 장비 및 작전운용 지식을 포함한 첨단 장비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스스로 무기를 개발하고 러시아가 거드는 식으로 북한군 체질 강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핵·미사일 견제에 집중했던 한·미의 국방 협력 방향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새 정부의 안보 정책은 이미 난해한 고차방정식을 마주한 셈이다.
일각에선 북한이 경제난으로 아사자가 발생한다거나, 북한의 무기는 성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설픈’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선입견에 따른 일종의 평가절하다. 북한이 지난달 21일 청진항에서 신형 구축함을 진수하려다 사고가 발생한 상황도 이런 관측에 활용되고 있다. 한·미 전문가들은 북한에 대형 크레인이나 인양 기술이 없다는 이유로 옆으로 넘어져 있는 사고 구축함을 바로 세우기조차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인 38노스가 지난 2일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구축함이 바로 서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생필품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서 인공위성을 쏘고, 김 위원장의 명령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북한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4일 취임식에서 “아무리 비싼 평화도 전쟁보다 낫다”며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낫고, 싸울 필요 없는 평화가 가장 확실한 안보”라고도 했다. 한반도의 평화 구축은 모든 국민의 염원이다. 그러나 핵이라는 절대무기에 재래식 무기를 얹은 달라진 북한을 마주한 새 정부의 안보 방정식 풀기는 가감 없는 북한 평가와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다. 의사가 처방에 앞서 검사 결과를 살펴보는 것처럼.
정용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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