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청와대 개방…“역사적 공간의 가치 살려나가야”

고고역사학·건축학 등 관련 학계에선 대통령실의 청와대 복귀가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단 걸 인정하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들은 청와대가 고려시대 삼경(三京) 중 하나였던 남경(南京) 터이자 조선시대 경복궁 후원으로 조성된 역사적 공간이란 데 주목하면서, 윤석열 정부에서 개방 자체에 급급한 나머지 이 같은 가치가 제대로 연구·조명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2023년 기초조사 때 참여했던 류성룡 고려대 교수(건축학)는 4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경복궁과 후원(청와대)을 엮어 봄으로써 명성황후 시해사건 당시 동선을 밝혀낸다든가 하는 후속연구도 가능한데 전혀 진척되지 못했다”며 “유산으로서 가치 탐색은 시작도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운 전주대 명예교수(전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장)는 “고려시대 남경의 이궁(離宮, 별궁)이 있던 역사 같은 게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채 졸속 개방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그는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상징적인 국가유산인데 지금은 유원지가 돼버린 느낌”이라면서 “지금이라도 어딜 보존하고 공개할지 전문가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주 국가유산청 자연유산위원도 “2022년에 청와대 노거수 6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 외에 추가 조사를 통해 사적 지정 등이 필요한 곳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청와대 경내엔 2018년 보물로 지정된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9세기),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인 ‘침류각’(1900년대 초) 등이 있다.
대통령실의 ‘청와대 복귀’ 이후에도 개방 정신은 계속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광표 서원대 휴머니티교양대학 교수(문화유산위원회 근대문화유산분과 위원)는 “이미 개방한 역사가 있는데 대통령이 예전처럼 쓴다는 건 시대에 맞지 않는다”면서 “일부 시설에 근대적 통치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전시하는 등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홍승재 원광대 명예교수(궁능문화유산분과 위원장)는 “예전처럼 담장으로 막을 게 아니라 경복궁 후원으로서 공간을 연결해 ‘열린 청와대’를 지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국민과의 소통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청와대가 과거 불통의 상징처럼 거론됐던 탓이다. 진희선 연세대 도시공학과 특임교수는 “청와대로 돌아간다면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어떻게 구성해 나갈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인근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서촌에 거주하는 최모(44)씨는 “청와대 인근 시위가 더 심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김모(56)씨는 “그동안 관광객들이 몰려와 집 주변에 담배꽁초가 쌓이곤 했는데 대통령 집무실이 돌아오면 거리가 깨끗해질 것 같다”고 기대했다.
향후 대통령실이 세종으로 옮겨간다면 청와대의 쓰임새가 다시 화두가 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10대 공약의 여섯 번째 과제로 ‘세종 행정수도 완성’을 제시하면서 대통령 세종 집무실을 임기 내 건립하겠다고 했다. 안창모 경기대 교수(건축학)는 “그렇게 되면 청와대는 다시 시민에게 돌려줄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장기적 계획까지 고려해 집무실을 둘러싼 제3의 해법이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청와대재단 측은 “별도 지침이 없기 때문에” 예전과 같이 4주 후까지 관람 예약을 받고 있고 주말 상설 공연도 진행 중이라고 4일 밝혔다. 재단에 따르면 3일에만 2만620명이 찾는 등 2022년 5월10일 첫 개방 이래 누적 관람객은 783만여명에 이른다.
강혜란.한은화([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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