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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화에 단군신화·한국말…경계선에 선 아픈 청춘의 초상

‘브레이킹 아이스’의 주인공 나나·하오펑·샤오(왼쪽부터)는 무기력한 청년 세대를 상징한다. 우연히 옌지에서 만나 친해진 이들은 백두산 등반을 위해 길을 떠난다. [사진 영화사 찬란]
4일 국내 개봉한 ‘브레이킹 아이스’는 중국 영화인데도 한국말과 노래가 간간이 들린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중심도시 옌지(延吉)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곳을 무대로 관광 가이드 나나(저우둥위), 상하이에서 온 엘리트 청년 하오펑(류하오란), 이모 가게에서 일을 도와주는 샤오(취추샤오) 등 세 청춘의 불안과 성장을 그려낸다.

우연한 계기로 만난 셋은 함께 밥 먹고, 술 마시고, 도시를 배회하다가 갑작스레 백두산 등정에 나선다. 영화를 만든 이는 ‘일로 일로’(2013)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싱가포르의 앤서니 첸(41) 감독이다. ‘브레이킹 아이스’ 역시 2023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초청작이다. 도시 배경의 가족 영화를 만들어온 그가 낯선 배경의 청춘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 때 경험한 고독과 소외 때문이다.

앤서니 첸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한 서점에서 만난 그는 “팬데믹 때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할 일이 없어지면서 감독의 정체성을 잃는 것 아닌가 하는 우울과 불안감에 휩싸였다”고 털어놓았다. 가까스로 ‘코로나 블루’에서 탈출한 그가 자신의 경험을 청년 세대의 보편적 정서로 표현한 게 이 작품이다. 그가 “이 영화엔 두 개의 이야기가 있다. 카메라 앞, 방황하는 세 청춘의 이야기. 그리고 카메라 뒤, 내 이야기”라고 말한 이유다. 청춘 영화를 가장 추운 곳에서 겨울 배경으로 찍은 건,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방’의 몸부림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아무 것도 안하고 누워만 있는 중국의 탕핑 세대가 느끼는 감정을 영화로 포착하려 했다”는 첸 감독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실패를 겪은 세 청년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사고로 피겨 스케이팅 선수의 꿈이 꺾인 나나, 열심히 공부해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도 불행한 하오펑, 꿈도 의욕도 없이 살아가는 탕핑 세대의 전형인 샤오.

얼음은 도입부의 얼음 채취 장면을 비롯해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첸 감독은 “한 가지 형태에 머물러 있지 않는 얼음이 표류하는 청년을 은유한다”며 “빨리 친해지고 빨리 헤어지는 주인공들에게 남는 건 기억과 감정”이라고 말했다. 백두산에 오르는 일주일 간의 낯선 경험은 이들의 정체된 삶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새로운 시작을 예고한다.

첸 감독은 “국경 도시 옌지는 삶에서 길을 잃고 모호한 경계에 놓인 세 청춘들이 만나는 완벽한 곳이었다”면서 “친구의 추천으로 백두산에 오르자마자 엔딩을 여기서 찍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주요 설정인 단군 신화는 이들이 백두산 등반 길에 겪는 기이한 체험과 맞물리며 큰 울림을 준다. 첸 감독은 “호랑이가 포기할 만큼 힘든 굶주림을 곰이 참아내고 인간이 됐다는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며 “단군 신화의 핵심인 ‘인내’를 통해 힘겨운 청춘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정현목([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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