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4일 취임 후 첫 행정명령으로 비상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했다. 핵심은 추경 편성이다.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민생 회복 소비 쿠폰과 소상공인 손실보상 등을 포함하면 30조원이 넘을 수도 있다. 정부가 돈을 풀어 경제 활성화를 이끌겠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은 아동수당 지급 대상 확대, 농업기본소득 도입, 자녀세액공제 확대 등도 공약했다. 이를 모두 실현하려면 당시 후보 캠프의 자체 계산으로도 5년간 210조원이 더 든다.
이 대통령 “추경 마중물로 선순환”
소비 자극해 경기 부양효과 기대
물가만 뛰고 빚잔치로 끝날 수도
민주당 정부는 돈 풀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재정 적자는 2020년부터 매년 100조원 안팎으로 늘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2017년 660조원에서 2022년 1068조원으로 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만 400조원이 증가한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36%에서 49.6%로 높아졌다. 지난해 국가부채는 1175조원으로 GDP 대비 46.1%다. 이 대통령도 빚지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듯하다. 지난달 21일 인천 유세에서 “한국 국가부채가 50% 안 되는데 다른 나라는 110%가 넘는다”며 “나라가 빚을 지면 안 된다는 무식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GDP는 2550조원이다. 이 대통령 말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1500조원을 추가로 풀 수 있다는 계산도 가능하다.
지역화폐를 비롯한 재정 확대 정책에 대해 이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으로 꼽히는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나랏빚을 늘리자는 것이 아니라 지나친 가계 부채 때문에 꽉 막힌 소비의 물꼬를 트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의 트라우마 탓에 2000년대 이후 너무 많은 흑자를 쌓았다.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 990억 달러(134조원)를 기록하며 순대외채권이 1조 달러(1360조원)를 넘어섰다. 만든 물건을 국내에서 소비하지 않고 외국에 내다 팔아 외화만 챙겼다는 뜻이다. 번 돈은 대출을 내서 아파트를 사는 데 썼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소비 비중은 GDP의 50%를 밑돌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 가계대출 비중은 90%를 넘어 최고 수준이다. 하 교수는 “재정을 잘 써서 돈이 돌게 하면 경기가 살아나고, 자연히 세금도 늘어나서 나랏빚을 얼마든지 갚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돈을 푸는 것은 대공황 이후 전 세계 정부 대부분이 내놓는 한결같은 대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개인 소득세율 인하 및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자녀세액공제 확대 등을 담은 ‘크고 아름다운 하나의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을 추진하고 있다. 향후 10년간 최대 5조3000억 달러(7700조원) 감세 정책이다. 세금을 줄이면 소비가 늘고, 그만큼 기업의 고용과 투자가 늘어 다시 소득이 늘어나는 선순환을 노리는 것이다.
문제는 기대대로 경기가 살아난다는 보장도 없다는 점이다. 지역화폐로 운동화를 사고 남은 돈은 그냥 주머니에 넣어두면 소비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거의 없다. 운동화 생산업체가 설비를 늘리고 사람을 고용하는 대신 금고에 넣어버리면 물가만 오르고 생산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물가만 오르고 갚아야 할 빚만 늘어나는 최악의 결과다. 트럼프의 감세 정책으로 향후 10년간 국가부채가 2조4000억 달러(3300조원) 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무디스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췄다. 미국 국채 가격도 폭락했다.
경기가 살아난대도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2년 전 대선을 앞둔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물가 상승은 고금리 탓”이라며 저금리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지난해 5월 물가상승률이 75%에 달했다. 리라화 가치는 3분의 1로 곤두박질치며 달러당 40리라를 넘어섰다. 급등하는 물가에 중산층과 서민이 고통받는 대가로 튀르키예는 매년 3~5%의 경제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불확실한 세계 경제 상황이 이어진다면 돈을 풀어봐야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정부가 푼 돈이 돌고 돌아 부동산값 폭등만 불러올 수 있다. 코로나 기간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겪은 일이다. 재정으로 소비를 자극하는 것은 각성제 처방이나 마찬가지다. 선순환으로 이어질지, 물가만 뛰고 빚잔치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은 가만히 있기보다는 뭐라도 해 보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고령화로 복지 지출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나라의 미래를 걸고 주사위를 던지는 게 과연 옳은 방향인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