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의 퍼스펙티브] 기업가정신 살리는 창조적 파괴 복원 없이 신성장은 없다
새 정부에 바라는 경제정책 전략의 전환

대규모 세수결손에 과세기반 확충 시급
새 정부는 대내적으로 빈사 상태에 처한 경제에 대한 응급처방과 함께 중장기 성장기반의 복원, 대외적으로는 급변하는 세계교역 질서 속에서 새로운 입지를 확보하는 것이 주요 과제다. 시급한 과제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여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일이다. 지금은 재정 건전성보다 경기 부양이라는 응급처방이 우선이다.
기업의 경제활력 회복해야 성장
경영 판단 실패엔 면책 명확해야
AI 국가 투자는 인프라 구축으로
데이터센터와 전력공급이 핵심
규제는 투명하게 재설계·정비를
예측 가능해야 기업도 혁신 나서
경영 판단 실패엔 면책 명확해야
AI 국가 투자는 인프라 구축으로
데이터센터와 전력공급이 핵심
규제는 투명하게 재설계·정비를
예측 가능해야 기업도 혁신 나서

조세는 사회 내 다양한 이해집단 간의 합의로 형성된다. 이는 사회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누가 얼마만큼 부담할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특정 분야에 대한 조세 지원은 곧 그 비용을 다른 집단이 떠안는다는 뜻이다. 사회적 합의가 미흡하고, 모두가 비용 부담을 회피하려 하면 재정은 국채 발행을 통해 미래세대에 전가되고, 그 지속가능성은 시장에서 냉정하게 평가받는다. 감세정책을 발표한 직후 시장의 신뢰를 잃고 퇴진한 트러스 영국 총리의 사례나,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발표한 관세 조치를 철회한 사례는 모두 재정의 지속가능성 문제로 귀결된다. 대선과정에서 다수의 세금 지원 제도가 공약됐지만, 이는 과세기반 확충과 충돌한다. 새 정부는 공제제도 정비를 출발점으로 조세제도 전반을 재검토하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재정 투입 없이 자영업자 지원하려면
재정 투입 없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지원하려면, 금융권의 자율적인 원리금 조정과 선제적 채무 재조정이 우선돼야 한다. 2023년 12월 국회를 통과해 2024년 10월부터 시행 중인 개인채무자보호법은 이를 가능하게 한다.
이 법은 기존에 기업에만 적용되던 사전적 워크아웃 제도를 개인에게도 확대해 3000만원 미만의 채무를 지닌 개인이 부실 가능성이 있을 경우 채권금융기관에 채무조정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명확히 했다. 은행은 이 요청에 따라 채무자의 신용도 변화를 평가하고 조정 여부를 결정한다. 이를 활용해 코로나19 당시 발생한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상 대출 중 일정 금액(예 5000만원 또는 1억원 이내)에 대해 채무 재조정이 가능하도록 특례법을 마련해야 한다. 은행은 대출자산에 대해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고 건전성을 주기적으로 평가해 부실에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 당시 수차례의 만기 연장과 이자 유예로 인해 건전성 평가가 미뤄졌고, 이로 인해 잠재적 부실 위험이 누적되고 있다. 이 위험이 대손충당금에 반영되지 않아 형식적으로 이익이 과대평가되고 있다. 이익 조정을 통해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이는 경제원리에 부합하며, 소상공인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복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물론 배드뱅크 설립을 통해 부채를 정리할 수도 있으나, 이는 공적자금 투입이 수반되므로 은행이 먼저 자율적으로 채무 재조정을 시행하고, 부족한 부분만 배드뱅크로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업가정신 위축시키는 배임죄 처벌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서는 기업의 경제활력을 회복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현재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 사라졌다는 평가가 많다.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고,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과거 개발연대에는 시대를 주도하는 신흥기업이 계속 등장했지만, IMF 위기 이후에는 네이버 등 일부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새로운 기업이 드물다. 이러한 정체의 배경은 IMF 위기의 원인과 그에 대한 대응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기업가는 정책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으며, 그 과정에서 정치와 관료의 개입이 정경유착과 재벌 형성으로 이어졌다. 자금 접근성이 성공을 좌우하던 시절, 무분별한 과잉투자가 부실을 초래했고, 이는 금융기관의 부실로 연결되어 IMF 위기로 귀결되었다. 이후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그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사후적으로 의사결정자들이 형사처벌을 받는 일이 빈번해졌다. 회사 이사들은 배임죄로, 정책결정자는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로 처벌받기도 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누가 감히 새로운 위험을 무릅쓰고 기업 경영에 나설 수 있겠는가?
이러한 위축을 막기 위해서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다한 경우, 결과적으로 실패가 있더라도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 대법원이 경영판단 원칙에 따라 다수의 판례를 제시하고 있지만, 배임죄는 형사사건으로 검찰의 기소 여부에 좌우된다. 강제수사와 별건 수사를 통한 기소 사례가 빈발하면서 기업가정신이 위축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IMF 위기 이후 우리 대기업은 지배주주의 이익에 편중된 경영을 해왔다. 특히 인적·물적 분할과 자본거래를 통해 지배주주 지위를 승계하려는 과정에서 일반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내부거래, 이른바 ‘터널링(tunneling)’이 활성화되면서 창조적 파괴를 통한 기업가 정신은 외면됐다. 새로운 기술로 주목받는 기업이 등장하면 지배주주는 해당 기업과의 거래를 통해 기술을 흡수하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구조화하며 기업생태계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이해 상충 상황에서 이사의 결정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뿐 아니라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 회사는 주주의 것이며, 이사회를 통해 회사가치를 제고할 책임경영자를 선임하는 것이 기본이다. 은퇴를 발표한 워런 버핏이 후계자를 선정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했는지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승계는 혈연에 따른 지분 이전이 아니라, 회사 가치를 가장 잘 올릴 수 있는 인물을 고르는 것이다. 이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인프라 투자와 제도 정비를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자유무역 중심의 교역질서가 흔들리고, 산업정책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산업정책은 개발연대와는 전혀 다르다. 당시에는 국가가 민간보다 더 많은 정보를 보유하고 있었고, 선진국의 산업발전 경로를 추격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자원 배분의 정당성이 있었다. 정보 비대칭이 심화한 지금의 구조에서는 정부가 특정 산업 분야를 정확히 선별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특정 산업을 직접 선정하고 개입하기보다는 시장에 중립적인 자세로 인프라 투자나 제도 정비를 통해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정부가 시장의 일을 주도하려 하기보다는 공정하고 투명한 게임의 규칙을 확립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인공지능(AI) 산업의 중요성과 향후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조기 대선 과정에서도 모든 후보가 AI 육성 및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AI 분야 내에서 어떤 영역이 주도할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정부는 특정 분야를 지정하고 투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AI 전반에 공통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정보기술(IT) 산업 육성을 위해 정보인프라 구축에 중점을 두었던 전략은 참고할 만하다.
AI 시대에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데이터센터와 전력공급 등 기반 인프라의 정비다. 노후 전력망의 스마트 그리드화, 안정적이고 친환경적인 에너지 믹스 확보, 전력 저장기술 개발, 송배전망의 업그레이드 등은 단순한 에너지 문제를 넘어 모든 신산업의 기초 인프라다. 전력공급이 불안정하거나 비용이 과도하면, 데이터센터, 전기차, 반도체 팹(Fab) 등 첨단산업의 국내 정착이 어렵기 때문이다. 새 정부는 산업 인프라 현대화를 국정 과제로 삼아 민간이 마음껏 혁신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원전 논쟁에 머물 것이 아니라 인프라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기업가정신을 촉진하는 더 효과적인 전략이다.
규제 환경의 혁신도 기업가정신 회복의 핵심 과제다. 현재 다수의 규제가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를 과감히 정비하고, 투명성과 거버넌스를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정보와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제도화하면 시장 참여자들은 동등한 정보 기반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다. 새 정부는 규제의 초점을 정보 투명성과 책임 있는 거버넌스 확립에 맞춰 기업들이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혁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공에는 보상을, 실패는 함께 감내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문화를 조성하며, 성공에는 보상을 부여하고 실패는 사회가 함께 감내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새 정부의 책무다. 공정한 경쟁이 보장된 환경 속에서 누구나 혁신할 기회를 갖도록 해야 한다. 정의로운 경쟁과 창의적 파괴가 일상화되고, 잠재된 기업가정신이 깨어날 때, 우리 경제는 다시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업가정신이 살아 있는 나라는 곧 혁신과 포용이 균형 잡힌 지속 가능한 경제를 만드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이용우 경제더하기연구소 대표·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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