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난장판으로 끝난 PSG 우승 축제의 밤
밤거리 몰려나온 팬들, 상점 약탈에 차량 방화 사회 불만 표출? 남성성 과시?…원인 무엇이든 해결책 필요
밤거리 몰려나온 팬들, 상점 약탈에 차량 방화
사회 불만 표출? 남성성 과시?…원인 무엇이든 해결책 필요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프랑스 파리에 사는 교민 이모(34)씨는 지난 1일(현지시간) 오전 샹젤리제 거리 인근에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장품 유통 체인인 마리오노의 매장 유리창이 전부 부서지고, 안은 홀랑 비어있었다.
근처 선글라스 매장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내부에 진열돼 있던 선글라스들이 몽땅 사라져 '선글라스'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무슨 매장인지도 못 알아볼 지경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대형 전자제품 매장 다티는 그나마 외관 일부를 철문으로 막아서 최악은 피했다. 그래도 유리 진열장 부분이 뚫려 무선 이어폰이나 스마트 워치 등이 약탈당했다.
지나가던 프랑스인들은 이런 광경에 "울랄라, 울랄라"를 연발하며 "있을 수 없는 일이야"라고 한탄했다.
이는 모두 그 전날인 지난 달 31일 프랑스 프로축구팀 파리생제르맹(PSG)이 이탈리아의 인터 밀란을 꺾고 창단 55년 만에 처음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에서 우승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경기에서 진 것도 아니고 PSG가 우승해서 프랑스 전역이 축제 분위기였는데, 그 축제의 끝은 난장판이었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달 7일 PSG가 준결승전에서 잉글랜드의 아스널을 꺾었을 때도 파리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역시 샹젤리제 거리를 비롯해 곳곳에서 상점들이 피해를 봤고, 기쁨에 도취한 한 운전자가 인파를 향해 차를 돌진해 3명이 다치기까지 했다.
이에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상점들은 결승전이 열리기 전날인 지난달 30일 저녁부터 유리창에 나무 패널이나 철망 등 자체 보호 장비들을 덧대며 '사수'에 들어갔다. 그런데도 일부 상점은 화를 피하지 못했다.
약탈자들은 샹젤리제 상점들에 방어막이 쳐 있자 근처 다른 타깃들을 노렸다.
교민 이씨가 목격한 광경도 샹젤리제 거리 상부의 개선문으로부터 약 650m 떨어진 거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곳 상점들은 '설마 여기까지…' 하는 마음에 무방비로 있다가 당한 것이다.
샹젤리제 거리 주변에서는 불에 탄 차들이나 역시 형체를 알 수 없게 훼손된 공용자전거의 '무덤'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자전거 바퀴의 고무 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혼돈의 밤이 지나간 후 프랑스 경찰은 밤사이 559명을 체포했다고 집계했다. 2명은 목숨을 잃었으며, 수십명은 부상을 당했다. 프랑스 전역에서 692건의 불이 났으며, 이 중 264건은 차량 화재였다.
이날 밤 거리를 휩쓸고 다닌 이들의 상당수는 10대 중후반∼20대 중반의 젊은 남성들이다.
프랑스 언론들은 주로 도시 근교 지역에 사는 이들이 일자리나 주거를 찾는 데 어려움과 좌절감을 느끼다 이처럼 대규모 스포츠 행사를 계기로 폭력을 통해 자신들의 불만을 표출한다고 분석했다. 저소득층에 누적된 사회적 긴장이 터져버리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이 현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의 사회학자 제라르 모제르는 5일 매체 라 데페슈와 인터뷰에서 "워낙 다양한 사건들과 사람들이 뒤섞여 있으니 그것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과격한 남성성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제르는 "'우리가 최고고, 우리가 가장 강하다'는 식의 태도"라며 "과거에도 집단이 모여서 자신들의 실력을 증명하려고 싸움을 벌이곤 했는데,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교외 지역의 젊은 층도 같은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경제적으로 불안한 상태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유일한 수단, 즉 육체와 힘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존재감을 확인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모제르는 특히 경찰의 대응 방식이 이들의 폭력적 성향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고 짚었다.
방패와 곤봉, 물대포와 최루탄을 쓰는 경찰들이 이들 불안한 젊은이들 눈엔 '적대적 집단'으로 보여 '집단 대 집단'의 충돌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해결 방법은 있을까.
모제르는 "우선 대규모 축하 행사의 규모를 줄이고, 다음으로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며 "학업 실패를 방지하고 이들 가정을 지원하며, 스포츠와 공동체 가치를 강조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제르가 거론한 해결책들은 프랑스 정부가 꾸준히 강조하며 애써 온 일들이긴 하다.
정부의 노력이 부족한 탓인지,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인지, 샹젤리제 거리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고 자랑하는 프랑스 사회가 깊이 고민할 문제다.
[email protected]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송진원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