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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내연남, 이 말 안했다…'두번의 칼부림' 아들의 절규

매일 반복되는 사건·사고는 단순한 뉴스가 아니라, 우리 삶 깊숙한 곳과 연결된 이야기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사고가 났다’는 사실 너머엔 삶과 범죄 사이, 복잡하고도 미묘한 경계에서 ‘정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형사의 고뇌와 고충이 존재합니다.
‘이 선택이 옳은가’,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길은 무엇인가’
흔들림 속에서도 끝내 걸어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
사건은 그들에게 단순한 수사를 넘어선 질문과 감정을 던집니다.
형사의 이야기를 통해 사건 이면을 들여다봅니다. 더중앙플러스-현직 형사과장의 ‘크라임 노트(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89)’에서 만나보세요.

제 2화. 애틋한 그리움이 참담한 비극으로


아직은 꽃샘추위가 드문드문 기승을 벌이던 어느 해 봄 저녁.
평범할 줄 알았던 하루는 다급한 112 신고로 무너졌다.

" 사람이 칼에 찔려 죽었어요… 피투성이예요, 제발 빨리 와주세요! "

발신지는 경기도 A시의 조용한 한 식당이었다. 사건을 접수하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식당 옆 바닥에는 피가 번져 있었고, 안쪽에는 한 남성이 쓰러져 있었다.
다수의 자창(刺創·칼에 찔린 상처), 피범벅이 된 옷. 누군가에게 ‘복수’라도 하듯 격렬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미 숨이 멎은 피해자는 50대 남성이었다.

현장은 치밀하지 않았다. 주변 목격자와 식당 관계자의 진술을 종합하면 피해자는 누군가와 약속이 있어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현장에서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확보해 즉시 통화 기록을 확인했다.

마지막에 통화한 인물 이모씨가 유력한 용의자였다.

늦은 저녁, 경찰서에 제 발로 찾아온 그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용의자는 피해자의 내연녀 아들이었다. 그는 불과 몇 시간 전 서울에서 자신의 친모 또한 살해하고 온 상태였다.

이용배(가명), 36세. 조사실에서 마주한 그는 말수가 적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진술은 꾸밈이 없었다. 어떤 핑계도, 변명도 없었다. 다만 삶이 그를 어떻게 짓밟았는지를 조용히 증언했다.

어릴 적, 용배는 부모님과 어린 동생과 함께 작은 단칸방에서 살았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부모가 있고, 식구가 있었다. 평범하다고 믿었던 그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방과 후 친구들과 놀다 늦게 귀가한 용배는 낯선 장면을 마주했다. 문틈으로 목격한 건 어떤 남자의 웃음소리, 그리고 어머니의 실루엣이었다.
그 어린 가슴엔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자리 잡았고, 결국 아버지도 진실을 알게 됐다.

그날 이후 집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었다.
매일 말다툼이 이어졌고, 살림살이가 부서지고 나동그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작별 인사 한마디 없이 어머니는 가출했다.

그때 그는 만 일곱 살, 동생은 겨우 다섯 살이었다. 두 형제만 집에 남겨졌다. 남겨졌다는 말로는 다 담지 못할 버려진 시간이 시작되었다.
떠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소년. 미드저니로 그린 일러스트를 일부 수정해 완성했다. 이경희 기자
아버지는 무너졌다. 늘 들고 다니던 공구 대신, 술병을 손에 쥐기 시작했다. 말 대신 욕설이 나왔고, 손이 먼저 올라가는 날이 늘었다.
형제는 아버지가 잠들 때까지 동네를 배회하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재혼에도 실패한 아버지는 두 아들 앞에서 독극물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거품을 물고 쓰러진 아버지의 모습을 용배는 슬퍼할 겨를 없이 그저 멍하니 바라봤다. 어린 동생의 손을 꼭 잡은 채.

결국 형제는 시설에 맡겨졌다. 그곳에도 따뜻함은 없었다. ‘부모 없는 아이’라는 낙인은 이들을 고립시켰다. 학교에선 또래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고, 시설 내에선 폭력과 억압을 버텨야 했다. 17살 되던 해, 용배는 동생을 데리고 시설을 탈출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차가웠다. 용배는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했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허드렛일도 정규직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도 동생은 먹여야 했다. 그는 동생의 유일한 가족이자 보호자였다. ‘형’이라는 말 속에 담긴 책임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남들이 물어볼 때마다 “부모님 일찍 돌아가셔서요”라고 답했다. 돌아서면 눈물이 밀려왔다.

잊고 있던 그 이름, 어머니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우연히 가족관계증명서를 뗐을 때, 잊고 있던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

사라졌다고 믿었던 이름이, 여전히 문서 한쪽에 남아 있었다.
며칠을 고민했다. 마음 한쪽이 저렸다. 버림받았다는 기억은 평생의 상처였지만, 그래도 어머니였다. 이제는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왜.
왜 우리를 그렇게 버려야 했는지.

3월의 어느 날, 용배는 증명서에 주소지로 적힌 동네의 낡은 임대아파트를 찾았다.
초인종을 누르는 손끝이 떨렸다.

" 누구세요? "

낯선 노년의 여성이 문을 열었다. 몇 초간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챈 듯 눈동자를 고정시켰다. 그러나 반가운 기색은 없었다.

말없이 등을 돌린 어머니의 뒤를 따라, 그는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작은 집은 생각보다 더 좁았다. 벽지는 누렇게 변색돼 있었고, 오래된 소파엔 담요가 덮여 있었다.

어머니는 딸기 한 접시를 내놓았다. 하지만 용배는 그저 소주잔만 비웠다. 몇 잔을 들이킨 뒤, 그동안의 삶을 이야기했다.
동생을 어떻게 키워왔는지, 어떤 아픔 속에 살았는지를. 그리고 마침내 꺼낸 말.

" 왜였어요? 왜 우릴 버린 거예요. "

어머니는 고개를 돌렸다.

(계속)

어머니의 한마디에 아들은 무너져내렸습니다.
분노는 그를 집어삼켜 마침내 통제력을 잃었습니다.
품고 있던 흉기를 꺼냈고, 거실은 피로 물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휴대폰을 열어 전화번호를 찾았습니다.
아버지와 가정을 무너뜨렸던 사람.
그는 곧장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아들은 두번의 분노를 참지 못했습니다.

수사팀은 한동안 이 사건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범죄는 잔혹했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삶의 궤적은 더욱 처절했기 때문입니다.
경찰의 역할이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하게 만든 기억.
더 자세한 사연은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36827

※ 이 글은 필자의 실제 경험을 기록한 개인적 의견일 뿐, 경찰의 공식 견해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며,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 유지를 위해 일부 각색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박원식([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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