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엽서에서 K팝 굿즈까지…소비하며 추억하는 ‘기념품 전성시대’

이렇게 ‘물질’로 된 기념품이 개인에게 보편적으로 허락된 시대는 불과 한 세기 남짓이다. 한국의 경우 구한말 이후 대량생산 체계가 점차 도입되고 철도 등으로 교통이 발달한 데다 소매품 가게가 활성화되면서 비로소 ‘추억’을 기념품으로 치환하는 게 일반화됐다. 개인의 생애에서도 상장·졸업장과 상패·트로피 등이 성취에 대한 ‘인증’으로 주어졌다. 기념품은 개인의 특별한 순간을 넘어 시대의 가치를 담아낸 기록으로서 우리 사회 변화를 관통하는 ‘민속품’의 일종이다.

서울 종로구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기념의 본질을 돌아보는 특별전 ‘오늘도, 기념: 우리가 기념품을 간직하는 이유’가 열리고 있다(9월 14일까지). 조선 후기 관료 사회에서 장수를 기념하고 예우하기 위해 제작한 ‘기해 기사계첩’(국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을 비롯해 19세기 후반 만인산(萬人傘, 수령의 공덕을 기려 만든 해가리개)과 각종 기념 수건, BTS 응원봉, 마라톤 완주 메달 등 200여점이 선보인다. 총 3부의 구성을 통해 근대 이전부터 개인의 출산부터 경로까지 축하해온 방식, 공동체 차원에서 나라와 사회가 특정 성취를 치하해 온 방식, 그리고 관광 기념품이 일상 속 기념 문화를 어떻게 형성해 왔는지를 돌아볼 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기념품 문화가 자리 잡는 과정이 구체적인 유물을 통해 소개된다. 결정적인 계기는 1915년 조선총독부가 통치를 시작한 지 5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조선물산공진회다. 당시 행사는 ‘근대화된 조선’을 내세우기 위한 정치적 이벤트였지만 “금강산 관광 대중화, 기념품 유통 활성화로 이어지며 한국 관광문화의 형성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시 기획 측 시각이다. 경복궁 내 주요 전각을 헐어 만들어낸 본 행사장 외에도 소규모 박람회가 조선호텔, 경성호텔 등 각지에서 열렸고 국내외 100만명 넘는 관람객이 새로운 근대 문화를 경험했다.


서양인을 대상으로 조선의 이국적이고 낯선 풍물을 강조한 기념품도 눈에 띈다. 일제강점기 조선물산상회에서 제작한 조선풍속인형세트는 기생, 장승, 물동이를 이고 있는 부인, 지게를 멘 남자 등 당시 ‘조선의 풍경’이 작은 인형에 담겼다. 궁중에서 사용되던 신선로는 관광기념품으로 대량생산됐다. 이런 기념품들이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를 거쳐 월드컵 배지가 되고 이젠 다채로운 K팝 그룹의 응원봉으로 변화해온 세월이 아스라하게 느껴진다.


민속박물관에선 이와 별개로 7월 27일(일)까지 특별전 ‘사진관 전성시대’도 진행 중이다. 오늘날 ‘기념’의 대표행위가 ‘인증샷’이란 점에서 묶어서 볼 만하다. 일제강점기의 천연당사진관에서 찍은 사진, 사진관 사진사들의 이야기와 물건, 백일·돌·졸업·결혼·회갑과 같은 특별한 순간을 찍은 사진 등 200여 점이 선보인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민속’이고 박물관 유물이 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강혜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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