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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 죽음 뒤…야구 전설 디마지오, 클린턴 외면하다



허진석의 스포츠 라운지

그는 투우를 사랑했고 사냥과 낚시를 즐겼다. 투우사랑은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와 『불패자』 『오후의 죽음』을 낳았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의 산물이다. 쿠바 앞바다에서 청새치를 잡은 경험은 『노인과 바다』에 녹아들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의 소설에는 스포츠가 자주 등장한다. 거기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죽음은 그의 삶과 문학 저변을 배회하는 코드다.

헤밍웨이 세계의 죽음은 차갑지도 어둡지도 않다. 에너지와 온도감으로 충만하다. 론다의 오후, 안달루시아의 태양 아래 뜨거운 피를 뿜어내며 싸움소의 육중한 몸뚱이가 대지 위에 나뒹군다. 투우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 죽음은 예고된 운명이다. 헤밍웨이는 론다 투우장(Plaza de Toros de Ronda)에 외롭게 선 싸움소에게서 ‘내던져진 존재’ 인간의 실존을 본다. 거역할 수 없는 악과 부조리, 예고된 죽음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사흘 간의 사투 끝 거대한 청새치 잡아
영화 배우 마릴린 먼로와 유명 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 두 사람은 1954년 1월 결혼했고 9개월 만에 이혼했다. [사진 위키미디어]
투우장의 제물들은 지중해의 영혼을 함축했다. 미로 속에 버려진 미노타우로스. 인간의 피를 양식 삼는 비극적인 운명은 고스란히 우리 삶의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는가. 투우사의 칼날에 심장을 내맡기는 싸움소가 대서양을 건너면 열대바다의 제왕 청새치가 된다. 미끼와 미늘이 운명처럼 기다리고, 긴 싸움의 끝은 바다를 시뻘겋게 물들이는 죽음뿐이다.

소설 『노인과 바다』의 시작. 산티아고는 쿠바 제일의 어부였다. 힘도 장사였고. 그러나 좋은 날은 지나갔다. 그는 늙었고, 운수도 사나워 석 달 가까이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 그를 돕던 소년 마놀린도 곁에 없다. 소년의 아비는 아들이 재수 없는 노인을 돕지 못하게 한다. 그래도 마놀린은 저녁마다 노인을 찾아가 숱한 모험담과 야구(!) 이야기를 듣는다.

산티아고는 운을 믿는다. 노를 저어 다시 바다로 나간다. 물고기를 못 잡은 지 85일째 되던 날, 그가 다른 배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거대한 청새치가 입질을 한다. 그 순간 녀석이 그가 평생 낚은 어느 물고기보다 크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사흘에 걸친 사투가 시작된다. 고통이 늙은 몸을 덮친다. 낚싯줄에 쓸린 손에서 피가 솟구친다. 그래도 산티아고는 위험과 고통에 굴하지 않는다.

그는 그날 밤 뉴욕 양키즈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가 경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야구는 『노인과 바다』를 관통하는 코드다. 산티아고는 되뇐다. “오늘이 벌써 이틀째인데, 아직 경기의 결과도 모르고 있다니. 그러나 내 일에 신념을 가져야지. 발뒤꿈치 뼈가 아프면서도 끝까지 경기를 해내는 위대한 디마지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이종한 번역)

산티아고는 청새치를 죽인다. 물고기는 너무 커서 배에 올릴 수 없다. 배 옆에 묶고 항구로 향하면서 노인은 희망에 부푼다. 그러나 피 냄새를 맡은 상어들이 몰려들어 청새치의 살을 뜯어먹는다.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배에 매달려 있는 것은 청새치의 거대한 가시뿐이다. 노인의 사투는 패배로 끝났는가. 신정현은 논문 ‘헤밍웨이 인물들의 위험한 선택’에서 말한다.

“그는 삶에서 실패했다고 볼 수는 없다. (중략) 그의 숙명 속의 패배는 곧 패배 속의 승리이며, 이것이 바로 실존적 승리이다. ‘인간은 결딴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하이네만)는 헤밍웨이의 실존주의적 주제는 『노인과 바다』에 아주 정교하고 힘 있는 상징장치를 통해 표현되어 있다.”

‘바람둥이’ 클린턴 대통령과 악수 거부
앤서니 퀸 주연의 영화 ‘노인과 바다’ 스틸. [중앙포토]
『노인과 바다』는 수퍼스타 조 디마지오에 대한 숭배를 드러낸다. 디마지오는 양키즈의 전설이다. 1941년 7월 17일에 기록한 56경기 연속안타는 머릿돌처럼 빛난다. 헤밍웨이는 디마지오의 기록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가 본 것은 디마지오가 고통 속에 피워낸 마지막 불꽃이다. 부상으로 1949년 시즌 절반을 결장한 디마지오는 이듬해 3할 타율(.301)과 122타점을 기록한다.

디마지오는 메이저리그에서 13시즌 동안 타율 .325와 1537타점, 361홈런을 기록했다. 그의 야구는 모두 잊히고, 56경기 연속안타만 남았다.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와의 사랑으로 더 유명하다. 디마지오와 먼로는 1954년 1월 14일 결혼했다. 야구 스타와 배우의 결혼은 9개월 만에 파경을 맞는다. 소용돌이치는 불행은 죽음 앞에 이르러서야 숨을 죽인다.

디마지오는 먼로에게서 자신을 포함, 9남매를 품어낸 어머니의 모습을 기대했다. 그러나 먼로 주변엔 결혼 후에도 남자가 들끓었다. 전성기 여배우에게 출연 제안도 끊이지 않았다. 디마지오의 인내는 한계로 치달았다. 먼로가 영화 ‘7년 만의 외출’을 찍을 때 디마지오는 폭발한다. 그 유명한, 지하철 환풍구 바람에 스커트 자락이 올라가는 장면에서.

디마지오와 이혼한 먼로는 극작가 아서 밀러와 재혼하지만 다시 헤어진다. 프랭크 시나트라와 사귀고 케네디 대통령과 염문을 뿌렸다. 할리우드와 백악관의 절대 권력이었던 그들이 먼로를 노리개 삼았다는 주장도 있다. 먼로는 약물중독 등으로 심신이 엉망이 돼 병원에 갇혔다.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디마지오만 병원으로 달려갔다. 재결합이 임박한 듯했다. 그러나 1962년 8월 5일, 먼로가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디마지오는 먼로의 장례식을 주관했다. 뉴욕 타임스는 디마지오가 먼로의 시신에 마지막으로 입을 맞추며 “I love you”라고 두 번 속삭였다고 썼다. 디마지오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재혼하지 않았다. 그리고 매주 먼로의 무덤에 장미꽃을 바쳤다. 1999년 3월 8일 84세로 세상을 떠날 때 디마지오가 남긴 말은 “이제 먼로를 보겠군(I’ll finally get to see Marilyn)”이었다고 한다.

운명은 그의 사랑을 결딴냈지만 디마지오는 무릎 꿇지 않았다. 그는 먼로가 사내들의 탐욕에 희생됐다고 생각한 것 같다. 호색한을 인간 취급하지 않았다. 재임 중 성추문으로 탄핵위기를 겪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초대했지만 가지 않았다. 1995년에는 칼 립켄 주니어가 연속경기 출장기록을 세울 때 볼티모어 야구장에서 클린턴과 마주쳤다. 디마지오는 클린턴이 청한 악수를 거절했다.

허진석 한국체육대 교수. 스포츠 기자로 30여 년간 경기장 안팎을 누볐으며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지냈다. 2023년 한국시문학상을 수상하고 여러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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