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필향만리’] 君子固窮(군자고궁)
왕들을 설득하여 바른 정치를 펴게 하고자 제자들을 거느리고 천하를 두루 돌며 유세를 하던 공자 일행이 진(陳)나라에서 식량이 떨어져 굶어죽을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재진절량(在陳絶糧:진나라에서 식량이 끊기다)’이라 기록된 이 사태는 공자 생애기록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후대에는 선비가 처한 곤궁한 상황을 묘사 혹은 위로하는 4자성어로도 쓰이게 되었다.
식량이 바닥나자 자로가 “명색이 군자가 이처럼 궁하게 살아도 되는 겁니까?”라며 대들듯이 물었다. 이에 공자는 “허허! 군자는 본래 곤궁하게 살며 곤궁할 때 심지가 더욱 굳어진다. 이에 반해 소인은 곤궁하면 행동이 지나쳐 비리를 저지르게 된다”라고 답했다. 군자고궁! 곤궁함속에서도 오히려 유유자적할 수 있는 인품이라야 군자인 것이다.
송나라 때 시인 구양수(歐陽脩)는 “시는 곤궁함이 많을수록 더욱 좋아진다”는 ‘시다궁이후공(詩多窮而後工)’설을 주장했다. 세계가 공감하는 문학이론이다. 실지로 곤궁함이 오히려 유명 학자, 유명 시인을 낳는다. 중국의 소동파, 한국의 김정희 선생이 대표적 사례이다. 인생의 꽃은 풍요가 아니라, 오히려 눈물 속에서 핀다. ‘자본만능’에 취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곱씹어볼 때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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