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의 이코노믹스] 열악한 미국 내 제조업 공급망 지적해 관세 협박 맞서야
트럼프와의 관세 협상 성공으로 이끌려면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통상 환경은 거칠게 몰아치는 3각 파도를 연상케 한다. 자국의 유효관세를 100년 전 수준으로 회귀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방위 관세 압박, 세계 최대의 제조업 국가로 등극한 중국의 공급 과잉, 한국을 선진국으로 견인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 온 다자 통상 규범의 붕괴다.
미국의 품목별 관세, 한국 정조준
상호관세는 10%가 하한선 될 듯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 늘수록
미국의 대한국 무역적자도 커져
미 제조업 구조적 문제 파고들고
대미 농산물·에너지 수입 늘려야
상호관세는 10%가 하한선 될 듯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 늘수록
미국의 대한국 무역적자도 커져
미 제조업 구조적 문제 파고들고
대미 농산물·에너지 수입 늘려야
![지난 4월 2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가별 상호관세율을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6/09/8fae9e8d-6107-4f60-a6bb-5231e35bd04d.jpg)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보호무역을 앞세운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2018년 미·중 무역 전쟁이 시작되며 ‘정치 체제와 경제가 양립할 수 있었던 세계화’와 ‘규범 중심의 다자무역체제’는 무너졌다. 세계 정치·경제 질서의 판이 바뀌고 있었는데, 한국 정부는 그 변화를 일시적인 일탈로 생각하고, 다자체제가 복원될 것이라 믿었다. 오판이었다.
다른 선진국보다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제조업 비중과 무역 의존도가 높고 미국과 중국이 가장 중요한 무역 및 투자 상대국인 한국은 미래 지향적인 통상 정책의 판을 새로 짜는 패러다임 전환에 실패했다. 그 사이 중국과 트럼프 리스크는 더 커졌고, 한국은 그 리스크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를 최소화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상호관세 90일 유예, 다음 달 8일 종료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정한 ‘90일 협상’ 기간은 오는 7월 8일 종료된다. 그때까지는 10% 관세를 유지하지만 90일 기간이 끝나면 자신이 발표했던 ‘상호관세’ 수준으로 복원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5월 말 미국 법원은 ‘국가경제비상수권법’을 근거로 발동한 상호관세가 헌법에 반한다고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즉시 항소했다. 항소심은 확정판결 때까지 상호관세 유지를 결정했다. 만약 항소심에서도 패한다면 이 사안은 대법원까지 갈 것이다. 1년 이상 소요될 법정 공방만 믿고 미국 정부와 관세 협상을 미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위험한 착각이다.

트럼프 상호관세 후 최초 합의였던 미국-영국 무역합의 내용이나 145% 대 125%로 맞섰던 미·중 관세 전쟁이 90일 휴전으로 국면 전환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10% 관세가 트럼프 행정부가 상정한 하한선이라는 것이다. 트럼프가 대선 과정에서 모든 국가를 상대로 10% 보편관세를 공언했던 그 10%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한국은 10% 하한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
트럼프 발 관세 폭탄에 위축되지 않고 트럼프 2기 이후까지 내다보는 큰 그림을 그린 뒤 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협상 전략을 도모한다면, 추락하는 한국 경제에는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의 첨단 제조업으로 미국의 취약성을 메우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던 필자의 주장(2025년 3월 10일 자 ‘최병일의 이코노믹스’)은 이재명 정부에서도 유효하다. 그렇다면 그 협상 전략은 무엇일까.
미국 제조업 최대 투자국 된 한국
트럼프 행정부와 관세 협상에 임하는 한국 정부는 “숫자를 협상하러 왔다. 숫자를 만들어 내는 구조도 함께 논의해야 그 숫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협상 원칙을 천명해야 한다.

한국 기업의 미국 신규 투자가 증가할수록 공장 가동에 필요한 소재와 부품, 장비의 미국 수출이 늘었다. 지난 30여년간 미국은 자국 내에서 완결됐던 제조업의 생태계의 공급망을 전 세계로 분산해 왔다. 이는 미국에 제조업 투자를 할 때 소재와 부품, 장비를 기업이 원하는 만큼 적정한 가격에 신속하게 미국 내에서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의 관세 협박에 미국 투자를 늘리더라도 제조업 공급망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생색내고 싶어하는 한국 기업의 투자가 제대로 된 경제 성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을 한국 협상가는 쉽고 단호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내에서 숙련된 노동자를 확보하는 것이 ‘우물에서 숭늉 찾기’ 같다는 기업의 푸념을 전달해야 한다.

물론 한국 협상 대표의 ‘강의’를 경청할 만큼 미국 통상 협상가의 인내심은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통상 협상대표라서다. 그럼에도 각종 압박을 견디며 미국 제조업 생태계의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한국의 협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야만 트럼프 임기와 그 이후 한국이 투자한 공장이 막대한 빚과 싸우지 않을 수 있다.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확대가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낳는 구조에 대한 책임이 한국이 아닌 미국에 있음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된다.
투자 애로 사항의 해소 요구해야
트럼프 관세의 첫 번째 목표인 무역 수지 적자 개선에 협력하면서 한국에 부과된 관세를 낮추고 궁극적으로는 철폐하기 위한 ‘협상 카드’는 무엇일까.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에는 축소 지향과 확대 지향, 두 가지 접근법이 가능하다. 한국의 수출을 줄이는 축소 지향이 아닌,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늘리는 확대 지향이 바람직하다. 극도로 침체한 내수, 허약해진 제조업 생태계 때문이다. 한국 자동차와 철강 수출액의 연간 최대치를 정하고 이 범위 내에서 수출하겠다는 식의 자율적 수출 통제는 하책이다. 한국산과 경합 관계가 미약한 미국산 에너지와 농산물 수입 확대가 상책이라는 게 전문가의 중론이다.
미국 제조업 부활과 중국과의 인공지능(AI)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트럼프에게 한국 제조업이 기여할 분야를 찾아내, 해당 분야에 대한 대미투자 확대와 투자 애로 요인 해결을 맞바꾸는 ‘주고받는’ 타결 구도를 만들 수 있으면 윈-윈(win-win) 협상이다. 트럼프 1기 이후 첨단 제조업 분야 한국의 대미 투자가 급증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한국이 미국의 최대 투자국으로 부상했으며 미국의 고소득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는 점을 한국 기업은 트럼프 취임 전후 미국 정치권에 알려왔다.
이제는 새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한국 정부는 모든 역량을 결집해 “한국의 미국 첨단산업 투자는 이미 미국의 경제 안보를 강화에 기여해왔고 앞으로 더 투자할 의향이 있지만 이를 위해 미국이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일관되게 미국 정부와 재계, 언론, 씽크탱크와 소통하며 ‘주고받는’ 협상 구도를 조성해야 한다.
중국 우회 수출 견제에 협력해야
미국이 주요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중국의 우회 수출 견제를 주요 의제로 제시한다는 보도가 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의회 청문회에서 중국의 우회 수출에 대한 강경한 방어 의지를 표명했다. 미국의 관세 장벽을 베트남과 멕시코 등을 통한 우회로 개척으로 대처해 온 중국에 정면 대응을 선언한 셈이다. 한국도 이 사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중국의 우회 수출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거세질수록 중국은 다른 수출 시장 개척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중국 첨단 제조업의 한국 공습은 시작됐다. 중국을 상대로 덤핑과 보조금을 이유로 무역 구제 조치를 발동하려면 경제 논리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중국의 우회 수출 견제를 소극적이며 수동적으로 다룰 것이 아니라, 한국 첨단 제조업의 경쟁력을 위협하는 중국의 비(非)시장경제가 야기하는 공급 과잉과 불공정 무역에 공동 대응하고 협력하는 전략을 적극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먹고 사는 문제를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로 해결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숙제는 트럼프와의 관세 협상이다. 담대한 결기만으로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허의 트럼프와 마주할 수는 없다. 한국에 몰아치고 있는 3각 파도를 만들어 내는 바람을 읽고,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한국 통상의 패러다임 전환이란 큰 그림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최병일 법무법인 태평양·통상전략혁신 허브 원장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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