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근의 시시각각] 이재명 정부가 ‘실용주의’ 이루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2년 5월 16일 정동욱 전 원자력학회장에게 이 같은 내용의 친서를 보냈다. 미국 MIT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정 전 회장은 차세대 원자로 APR1400을 개발한 주역이었다. 김 대통령은 “이번에 개발된 원자로는 안전성과 경제성이 한 차원 향상된 차세대 원자로라고 들었다”며 “이는 정동욱님을 비롯한 원자력 관계자 여러분의 철저한 소명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치하했다.
K원전 쇠퇴시킨 ‘탈원전’ 문재인
김대중·노무현은 적극적 원전투자
이념보다 국익 우선의 정책 펴야
김대중·노무현은 적극적 원전투자
이념보다 국익 우선의 정책 펴야
APR1400은 규모 7의 지진에 견딜 정도로 안전성이 개선된 한국형 원전 모델이다. 노태우 정부 때 개발을 시작해 김대중 정부에서 완성했다. 신한울 1~4호기 등 국내에 8기가 가동 중이다. 국내 원전 최초로 UAE에 수출돼 호평을 받고 있다. UAE의 1000디르함 지폐 뒷면엔 한국이 건설한 바라카 원전이 새겨져 있을 정도다. 마치 이재명 정부 출범 축하선물처럼 지난 4일 최종 계약이 체결된 체코 두코바니 원전도 APR1400의 개량형이다.
진보 성향인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은 원전 개발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김대중 정부 때 2기, 노무현 정부 때 4기의 원전 건설 허가가 났다. 하지만 탈원전을 고집한 문재인 정부 때 한국 원자력 산업은 멈춰 섰다.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비용이 47조4000억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신규 원전 백지화, 원전 건설 중단,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등으로 인한 비용을 2017년부터 2030년까지 계산한 수치다.
“원자력이든, 태양광·풍력이든 에너지 기술 개발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경쟁에서 뒤처지고 일자리는 미국이 아니라 해외에 생겨날 것입니다. 나는 그런 미래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2010년 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사고 이후 30년 만에 새 원전 건설을 선언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을 넉 달 앞둔 지난해 7월 9일 신규 원전 허가를 완화한 ‘청정에너지를 위한 다목적 첨단 원자력 배치 가속화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안은 상·하원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됐다.
이재명 정부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공약했다. 탈원전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원자력 발전 정책에 대해선 안전성 문제를 들어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도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합리적으로 융합하는 ‘에너지 믹스’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언주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15일 ‘원자력산업 종사자 현장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우파 에너지’ ‘좌파 에너지’ 같은 원자력에 대한 이념적 갈등에서 탈피해야 한다”며 “과학과 실용 중심, 경제와 안보의 관점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 대통령은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고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쓰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득표율(49.42%)은 김대중(40.27%)·노무현(48.91%) 전 대통령보다 훨씬 높다. 국회도 절대다수를 장악하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대통령이다. 에너지·교육·과학기술·산업 등 적어도 10년 이상을 내다봐야 하는 장기정책의 경우 단기적인 유행이나 특정 세력의 주장에 흔들려선 안 된다. 과학적·경제적 근거를 바탕으로 투명하고 치열한 공론화 과정을 통해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국제적 흐름과 미래의 전망을 보고 어떤 선택이 국익에 도움이 될지를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 야당 등 이 대통령을 반대하는 세력의 주장도 합리적이면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통합의 대통령, 실용의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억되는 길이다.
정철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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