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th&] 음악 꿈 접고 '이명 완치' 외길 26년…"치료는 과학·예술·나눔의 하모니"
Health&대한이과학회 공동 선정 박시내 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불안·스트레스 먹고 자라는 이명
뇌 속 회로와 감정까지 치료해야
새 수술 배우러 적금 깨고 해외로
“모든 배움은 사람을 젊게 만들죠”
음악가를 꿈꾸며 작곡에 몰입하던 어느 날, 재능의 벽 앞에 멈춰 섰다. ‘여기까지구나’. 한동안 비워뒀던 장래 희망이 다시 채워진 건 ‘의학도 음악처럼 그 자리에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예술’이라는 한 음악가의 말에 꽂히면서다. ‘저 길로 가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걷게 된 의학은 예술의 또 다른 무대였다. 지난 26년간 ‘이명 완치’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박시내(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대한이과학회장) 교수의 얘기다.
공부는 하느님이 주신 재능 같았다. 학업을 그만두려는 친구가 있으면 집으로 찾아가 ‘배움의 끈을 절대 놓지 말라’고 간절히 붙잡았다. 사람 살리는 말을 일찍이 구사했다. 이명 치료 역시 뇌에 각인된 절망을 말로 지우고, 희망을 심는 데서 시작한다.
이명은 일종의 허상이다. 청력이 떨어지면 뇌는 이를 보상하려고 ‘더 크게 들으라’며 비정상적인 회로를 만든다. 그래서 이명은 불안·스트레스를 먹고 자란다. 못 고친다는 말을 들으면 증상은 두 배, 세 배로 커진다. ‘삐, 윙, 쏴…’ 소리에 갇혀 고립되고 단절된다. 박 교수가 1999년, 국내 최초로 이명 재훈련 클리닉을 열게 된 이유다. 이명의 원인을 해결한 뒤에도 남아 있는 소리를 뇌의 유연성을 활용해 더는 인식하지 않도록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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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청, 청력 떨어지고 치매 위험도 커져
귀 안의 구조와 뇌 속 회로, 환자의 감정까지 조율하는 치료는 이명 완치를 앞당긴다. 이런 연구결과를 입증해낸 후, 박 교수는 초진 환자 문을 넓혔다. 진료 대기로 1년 이상 기다리게 할 수 없다는 마음이었다. 종일 120여 명의 환자를 맞은 날에도 박 교수는 “업은 업인 게 환자 보는 것이 제일 즐거운 사람이다”며 말갛게 웃는다. 많은 손님을 맞는 사람이라는 뜻의 ‘다빈(多賓)’이란 호가 그를 찾아온 배경이다.
마음 심(心). 박 교수의 방에는 이 한 글자가 흐른다. 환자의 고통을 끝까지 이해하려는 마음, 학문 앞에서 끝없이 배우려는 마음, 제자들과 함께 성장하려는 마음이다. 이명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잘 들어야 하고 더 깊이 봐야 한다. 의술과 교육, 리더십도 결국 ‘마음을 다하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귓속은 다루기가 몹시 까다롭다. 달팽이관이라는 단단한 뼈 안에 소리를 듣는 연약한 세포들이 종잇장보다 얇은 기저막 위에 얹혀져 있다. 하루 12시간씩 1년 넘게 마우스 실험에 매달렸던 이유다. 새로 나온 수술법을 배우러 적금을 깨 해외로 다녀오는 건 다반사였다. 학문에 대한 열정은 넘치는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박 교수는 “모든 배움은 사람을 젊게 한다. 최신 의료를 누구보다 빠르게 접한 것과 이를 나눌 제자들이 있음이 인생의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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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중이염 방치하면 청각 세포 손상
지식은 나눠야 가치 있다. 박 교수는 최신 과학으로 업데이트된 디지털 치료 플랫폼을 만드는 연구 과제에 착수했다. 진료 보조 도구다. 더 많은 의사가 골치 아픈 이명에 쉽게 접근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그는 “이명 유병률은 15~30%로, 이 중 10~20%는 병원을 반드시 찾아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며 “그 많은 이명 환자가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바로 볼 수 있는 환경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했다. 이명 원인을 환자 스스로 분석하는 건 치료에 도움되지 않는다. 분석을 위해 자꾸 이명을 들여다봐야 한다. 오히려 이명이 더 잘 들리고 소리 또한 커지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이명 완치’(작은 사진). 지난달 15~18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이명학회 학술대회(TRI 2025 Seoul)에서 33개국 석학 400여 명은 이 네 글자의 서예 작품(소엽 신정균 작가) 앞에 발길을 멈췄다. 환자의 고통과 한글의 미학, 의학의 가능성을 한데 품은 예술적 선언이었다. 대회장을 맡은 박시내 교수는 K-의료·문화가 어우러진 무대로 한국의 품격을 알렸다. 그에게 이명 치료는 과학·예술·나눔·리더십이 총동원되는 종합예술이다.
“너무 고통스러웠던 이명이 사라졌을 때 얼마나 행복한지 잘 압니다. 그래서 끝까지 해봐요. 절대 ‘못 고친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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