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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곤의 퍼스펙티브] ‘제2의 애치슨 라인’ 우려 키운 미 국방장관의 36분 연설

시험대 오른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필자는 지난 3월 28일자(24면) 기고에서 미국의 국방 전략과 동맹 정책이 한국에 끼칠 영향에 대해 짚어봤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21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한 연설은 트럼프 행정부가 고민해 온 국방·동맹 정책의 집대성 성격이 짙다. 헤그세스는 36분 동안 A4용지 15쪽(2만5000자) 분량의 연설을 했는데 오는 8월 미 행정부가 확정할 미국의 국방전략 지침의 요약본이라 주목된다.

트럼프의 질서 재편과 대가 챙기기
헤그세스는 이날 연설에서 미국의 지정학적 국가 정체성을 ‘인도·태평양(인태) 국가’로 규정했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처음으로 아시아·태평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 바꾼 지정학적 공간 개념에 따라 미국은 인·태 지역에 집중할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민주당 정부는 기본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국가와 인·태지역의 동맹국을 “연맹”(federate)해 결국 중국 견제에 활용하려 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유럽 방위를 위한 미국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인·태로 미국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유럽과 인·태를 분리하겠다는 의도다.

헤그세스, 지난달 싱가포르 연설
동맹국에 미·중 양자택일 압박
안보 대가 챙기겠단 의지 확고
미 국방전략서 한국 비중 낮은 듯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과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에서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헤그세스는 이런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정책 기조를 재확인했다. 뭐라고 명명해야 할지 학계에서 여전히 논란이 되는 트럼프의 ‘자국 중심의 이익 추구 외교’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미국이 더는 “도덕적이고 설교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하지 않으며, 다른 국가에 “특정 이념을 수용토록 압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신, 미국의 국가 이익은 철저히 챙기려 한다. 이를 해석하면 미국이 1945년 이후 유지해 온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혹은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와는 이제 결별하겠다는 의미다. 미국은 다른 나라가 민주주의를 하든 독재를 하든 관심 없고, 미국을 ‘착취’하는 것을 허용치 않고 미국이 지켜주고 번영시켜준 ‘대가’를 받아내겠다는 요구인 것이다.

중국 견제에 모든 역량 올인
헤그세스 연설의 방점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의 전략 목표 천명이다. 미국의 이런 입장은 지난 3월 29일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잠정국방전략지침』에서 밝힌 내용이다. 미국은 중국을 미국의 ‘유일한’ 기준 위협으로, 중국의 대만 점령을 역시 ‘유일한’ 기준 시나리오로 상정했는데 미 국방 책임자가 이를 재차 강조한 것이다. 기준(pacing)으로 선정되면 군사 전략, 병력 구성, 무기 개발, 예산 배분, 훈련 등의 초점이 된다. 미국은 중국 견제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의미다. 헤그세스의 연설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패권국가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은 “결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2027년까지 시진핑 주석은 대만 침공 능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가 이를 보여준다.

동시에 헤그세스는 인·태 지역 동맹국의 책임과 비용 분담을 강조했다. 직설 화법을 구사하는 그는 유럽의 나토 국가도 국민총생산(GDP)의 5%를 지출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위협과 더 강력한 중국 위협에 노출된 아시아 국가가 (국방비를 나토보다) 적게 쓰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는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이 지난 3월 의회 인준 청문회에서 동맹국의 적은 국방비를 문제 삼으면서도 “한국, 이스라엘, 폴란드는 충분한 기여를 한다”고 한 발언과 거리가 있다. 북한 위협의 최전선에 노출된 한국의 올해 국민총생산 대비 국방비(2.8%)가 적다는 의미로 읽힌다.

헤그세스는 동맹국의 국방비 증액 주문과 함께 경고도 잊지 않았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을 추구하는 전략을 지켜만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실제 헤그세스는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은 그들의 악의적인 영향력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긴장이 고조될 때 우리(미국)의 방위 의사결정 공간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과 스티브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통해 안보와 경제가 연계된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관세는 국가안보 고려와 연계되어 부과되어야 한다”(베센트)거나 “높은 관세와 미국의 방위공약 축소 또는 철회에 직면해야 한다”(미란)는 주장이다. 미국의 동맹국과 우호국은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하지 말고 확실히 미국 편에 서라는 공개적인 압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6일 “관세 협상을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연계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같은 달 11일 “(각국과의 경제 및 안보 현안을) 한 개의 패키지로 묶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다소 상반된 입장을 밝혔다. 협상에 능하다는 트럼프가 경제와 방위 공약이라는 미국의 두 가지 강력한 카드를 언제든 연계해 사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오히려 후자가 트럼프 행정부의 본심일 수 있다.

주한미군 비롯한 한·미 동맹 성격 달라질 듯
헤그세스는 마지막으로 인·태지역에서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전진 배치 태세 강화다. 그는 필리핀, 일본, 호주를 특정해 군사 협력 상황을 제시했다. 필리핀에는 미 해병대의 이동형 대함 미사일 체계(NMESIS)를 배치하고, 일본·호주와는 미사일 방어 기술과 데이터 공유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이 필리핀, 일본, 호주 3국과 함께 남중국해에서 정기 해양 활동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인도와는 군사훈련(TIGER TRIUMPH)을 통해 안보 협력을 확장 중이라는 사실도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동아태 국방전략을 소개하면서도 한국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둘째, 인·태 지역에서 동맹·우호국의 자체 방위 능력 강화 지원이다. 미국은 자국 산업과 협력해 해양 안보 컨소시엄을 출범시켰고, 이를 통해 역내 무인 항공기와 선박을 활용한 해양 감시 능력을 구축·유지하고, 실질적인 작전 효과를 창출하겠다는 내용이다. 핵심 파트너 국가로 동남아 국가들을 꼽았는데, 여기서도 한국은 빠졌다.

마지막으로, 방위 산업 기반의 재건이다. 헤그세스는 미국 주도로 14개 나라가 참여한 『인도-태평양 산업 복원력 파트너십(PIPIR)』이라는 다자 포럼을 언급했다. 첫 사업으로 시행된 호주와의 P-8 해상초계기 레이더 시스템 정비를 설명하며, 뉴질랜드와 함께 ‘대한민국’이 파트너임을 밝혔다. 긴 연설 말미에 드디어 한국이 한번 언급됐지만, 미국 함정의 유지·보수·정비(MRO) 수준에 그쳤다.

헤그세스의 연설만 본다면 미 국방 전략에서 한국의 비중은 크게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번 기고에서 소환했던, 한국을 방어선에서 제외한 ‘애치슨 라인’이 어쩌면 더 가까운 현실로 다가왔을 수 있다. 미국이 중국 견제에 모든 것을 걸고 있지만, 인·태 지역에서 미국이 겉으로 드러내고 있는 핵심 국가는 일본, 호주, 필리핀, 그리고 협력을 확장할 인도로 여기는 분위기다. 미 국방부 내에서 입김이 센 콜비가 자신의 저서인 『거부전략』에서 언급한 것과도 일치한다.

선택의 순간 맞은 한국 정부
미국 입장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북한의 가장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돼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견제의 최전선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칭다오에 사령부를 둔 중국의 북해함대는 서해를 통과해 동중국해를 따라 대만해협 인근으로 투사된다. 따라서 중국 전력이 서해를 통과할 때 주한 미 공군 또는 지대함 미사일 등으로 공격이 가능하기에 미국에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은 크다. 반대로 그만큼 주한 미군 기지가 중국이나 북한의 집중 공격에 노출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미국은 한국보다 후방에 있고 대만 해협에 가까우며 이미 미 7함대 사령부가 있는 일본을 중시하고,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미국의 전략이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선택의 순간을 맞았다. 한국이 미국 전략에 동참하는 수준에 따라 주한 미군을 비롯한 동맹 변화의 성격과 범위가 달라질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지만 미국이 1950년 한국을 방어선에서 제외한 ‘애치슨 라인’처럼 한국의 안보에 무게를 덜 두거나, 주한미군을 중국 견제에 활용하려는 시도는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미국의 새 국방정책이 애치슨 라인을 연상시키는 방향으로 확정된다면 북한에도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미국, 북한, 중국 등 한국을 둘러싼 주변 환경이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다. 실용외교를 표방하고 있는 새 정부의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시간이 많지 않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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