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근의 시선] 이재명표 재정, 지속가능하려면

재정 여건 악화 속 첫 추경 시험대
“인위적 부양 아닌 진짜 성장 추구”
공약대로 해야 시장 신뢰 얻을 것
“인위적 부양 아닌 진짜 성장 추구”
공약대로 해야 시장 신뢰 얻을 것
하지만 다른 것도 있다. 바로 경제 여건이다. 8년 전 문재인 정부가 받은 청구서들 사이엔 뜻밖의 ‘보너스’ 봉투도 숨겨져 있었다. 당시 정치적 혼란에도 우리 경제는 나름 선방했다.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코스피는 사상 최고치를 향해가고 있었다. 한국은행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끌어올렸다. 세수도 예상보다 잘 걷혔다. 정부 출범 직후 호기롭게 추가경정예산부터 편성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었다. 이후 문 정부에서 추경은 연례화했다. 막판에는 팬데믹까지 덮치며 추경에만 5년간 총 10차례, 150조원을 썼다. 원도 한도 없이 쓴 셈이다.
그런데 올해 사정은 전혀 딴판이다. 관세 폭탄에 수출은 줄고, 내수 침체도 깊어지며 한은은 성장률 전망치를 0%대까지 끌어내렸다. 나라 곳간도 텅 비었다. 지난 2년간 이어진 90조원 규모의 세수 펑크 탓이다.
물론 꼭 써야 한다면 빚을 내면 된다. 문제는 시장 여건이다. 최근 글로벌 국채 시장엔 이상 신호가 잇따르며 기축통화국 재무장관들조차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는 상태다. 시작은 미국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관세 폭탄을 투하하자 투자자들은 미 국채를 내던졌고, 금리는 빠르게 치솟았다. 관세전쟁이 물가 불안과 경기 침체로 이어질 것이란 비관론이 시장을 지배하면서다. 국채 금리의 상승은 그렇지 않아도 천문학적인 정부의 이자 부담을 더욱 늘리고, 시중 금리를 끌어올려 경제를 위축시킨다. 증시 급락에도 꿈쩍 않던 트럼프 대통령이 백기를 든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한번 깨진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못했다. 급기야 무디스가 미국의 과도한 재정적자를 이유로 신용등급을 강등시키면서 미 국채 금리는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미국만이 아니다.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불리던 일본·독일 국채 금리도 훌쩍 뛰어올랐다. 이른바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빚이 적어 괜찮지 않냐고? 글쎄다. 미·일은 그나마 기축통화국이다. 비(非)기축통화국만 따지면 우리의 나랏빚 수준은 낮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간한 ‘재정점검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 비율을 54.5%로 예상했다. 이는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비기축통화국 11개국의 평균치(54.3%)를 넘어선다. 규모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속도다. IMF는 한국의 부채 비율이 앞으로도 빠르게 올라가 2030년에는 59.2%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11개국 중 두 번째로 빠른 증가 속도다.
재정이라는 ‘마중물’ 조차 점차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셈이다. 새 정부에서 추경 논의가 시작되며 이미 우리 장기채 금리도 오름세를 타기 시작했다. 물론 0%대까지 떨어진 성장률, 계엄 사태 이후 가중된 서민과 자영업자의 고통을 생각하면 최소한의 추경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돈을 풀긴 쉽지 않은 여건이다. 자칫 물가와 부동산값만 자극해 “앞으로 받고 뒤로 내준다”는 불만이 커질 수도 있다.
그러니 최대한 신중히 규모와 내용을 정했으면 한다. 나랏빚 늘리는 국채 발행은 최소화하고, 비효율적인 지출을 줄여 재원을 마련할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다. 또 기왕 풀어놓은 돈이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 고용, 투자로 선순환하도록 사전에 정밀하게 구조를 짜야 한다. 돈이 제대로 돌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실탄을 아끼자는 차원이 아니다. 그래야 ‘이재명표 재정 정책’이 앞으로도 신뢰를 얻고 지속가능할 수 있다. 재정 투입이 무분별한 살포가 아니라 경제 구조를 바꾸고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란 명확한 메시지를 시장에 줘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공약집에 적힌 그대로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의 정책공약집은 ‘진짜 성장’을 표방하며 이를 “인위적 경기 부양이나 가짜 성장, 반짝 성장이 아니라 체질 개선과 창조를 기반으로 성장 잠재력을 업그레이드하는 지속적 성장”이라고 정의했다. 다행히 새롭게 구성된 대통령실 경제라인도 이를 실천에 옮길만한 경험과 능력은 갖춘 것으로 보인다. 남은 건 의지, 그리고 행동이다.
조민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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