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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대 흥행작' 영화 아닌 뮤지컬…'해피엔딩' 계속 되려면

대관식이 성대하게 막을 내렸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은 더할 나위 없는 ‘확실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토니상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대단하다. 수상 여부가 흥행 가능성이나 글로벌 진출과 직결된다. 이제 국내 언론의 관심은 ‘어쩌면 해피엔딩’의 전지구적 흥행 기록으로 옮겨질 것 같다. 오랜 세월 해외 진출을 지상과제처럼 여겨왔던 K뮤지컬계로서는 전대미문의 낭보이자 개가가 아닐 수 없다.

배우 대런 크리스(왼쪽)과 헬렌 셴이 8일(현지시간)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한 장면을 공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뮤지컬은 공연예술 장르다. 무대를 근간으로 하는 문화 산업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종일 세계 각국의 인기 드라마와 영화를 쏟아내는 OTT가 넘쳐나고 숏폼으로 제작된 인터넷 영상물이 정치도구로까지 활용되는 요즘, 아날로그 장르인 공연이 얼마나 대중들에게 영향이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티켓 매출을 올린 문화예술 콘텐트는 영상물이 아닌 뮤지컬 ‘라이언 킹’이다. ‘맘마미아’처럼 왕년의 대중음악을 가져다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백 투 더 퓨처’ ‘빌리 엘리어트’처럼 영화가 원작인 무비컬, ‘웃는 남자’ ‘오페라의 유령’ ‘지킬 앤 하이드’ 등 소설을 활용한 노블컬 등이 인기를 누리며 각광을 받는다. 장르를 넘나들며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다국적 문화기업의 ‘굴뚝 없는 전쟁’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공연계다.

제2, 제3의 ‘어쩌면 해피엔딩’을 꿈꾼다면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다양한 논의들이 있다. 우선 국내 공연가에서는 만나기 힘든 ‘담금질’의 과정을 개선해야 한다. 해외 공연산업계에서 뮤지컬은 정식으로 막을 올리기 전에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실험과 검증의 과정을 거친다. 대표적인 방식이 트라이아웃이나 프리뷰같은 제도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공연팀이 8일(현지시간)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공연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먼저 트라이아웃은 정식 개막에 앞서 인근 도시에서 무대를 꾸며 그 흥행성이나 예술성을 미리 검증해보는 방식을 말한다. 지역에서 먼저 막을 올리니 제작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문화향유 측면에서 지방이 단순한 시장 기능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어 양수겸장의 효과가 있다. 트라이아웃이 본 공연으로 저절로 연계되는 것도 아니다. 완성도를 높여야 할 부분이 있으면 업그레이드를 거쳐야 다음 단계가 비로소 진행된다. 극 내용의 수정이나 배우가 바뀔 수도 있다. 작품이 주저앉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치열한 예열의 과정이다.

프리뷰는 개막에 앞서 일정 기간 예비 공연의 막을 올리는 제도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대형 뮤지컬의 경우 대략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진행되지만, 반드시 기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공연이 바라는 완성도를 갖추지 못하면 몇 달씩 프리뷰만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프리뷰 기간에는 입장권 가격도 정상가보다 낮다. 무대 장치의 미숙이나 예기치 못한 고장으로 극이 멈출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관객은 공연의 정식 개막이 아님을 숙지하고 있는 탓에 환불이나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없다. 담금질이 필요한 속성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불문율도 있다. 일반적으로 평단이나 기자들이 이런 담금질의 과정에는 날카로운 비평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정식 개막까지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보장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인 셈이다. 간혹 연습실 풍경까지 소개하는 국내 언론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물론 정식 개막 후에는 날카로운 비판과 평가가 가차 없이 더해진다.

단계별 지원의 구축이나 심화도 고려해 볼 만한 환경이다. 기획자 혹은 제작자가 느닷없이 안주머니에서 꺼낸 결과물을 시장에 내놓는 것이 아니라 단계별로 차별화된 검증과 지원의 시스템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엔젤 펀드나 모태 펀드를 조성해 각 단계에 맞춰 차등화된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작품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이자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 사다리를 마련한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의 독회와 창작 지원 시스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산실 등이 비교하기 좋은 사례들이다.

브로드웨이에서 한 편의 뮤지컬이 막을 올리는 데에는 대략 7년 남짓한 기간이 소요된다. 그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끊임없는 업그레이드와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창작의 고통은 브로드웨이의 흥행 뮤지컬이건 우리 창작 뮤지컬이건 크게 다를 바 없다. 관건은 검증의 과정과 시스템으로 명작이 탄생할 수 있는, 아니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느냐의 여부일 뿐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등장은 반가운 사건이다. 그러나 감나무 아래 누워 다음 단감이 입으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서는 곤란하다. 몇몇 천재가 시장을 바꾸는 것만이 문화예술의 전부는 아니다. 좋은 과실이 여럿 맺히려면 가지도 치고 비료도 주는 노력이 이미 선행돼야 한다. 잘 익은 열매는 그 과정으로 얻을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물에 불과하다. ‘당연한’ 해피엔딩을 꿈꾼다면 명심해야 할 선결과제들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 사진 원종원

홍지유([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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