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러시아인 '암호화폐 기업가' 진짜 정체는…돈세탁업자
세탁한 자금 한국 기업에도 송금…"암호화폐, 제재회피 수단 변질"
세탁한 자금 한국 기업에도 송금…"암호화폐, 제재회피 수단 변질"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성공한 암호화폐 기업가로만 알려졌던 미국 거주 러시아인이 사실은 자국인 고객 등을 위한 돈세탁 업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업자의 범행 과정에는 예기치 못하게 한국 기업이 연루된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 뉴욕 동부검찰청은 9일(현지시간) 2023년 6월부터 2025년 1월까지 미국 금융시스템 등을 속여 약 5억3천만 달러(약 7천245억원)를 돈세탁한 혐의로 암호화폐 결제 시스템 '에비타페이'의 유리 구그닌(38)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다.
2022년 미국 뉴욕에 자리를 잡은 그는 사업, 과학, 운동 등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춘 외국인에게 부여되는 0-1A '특기자' 비자 보유자였다.
그러나 뉴욕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가면 뒤 구그닌의 실제 모습은 러시아인을 주요 고객으로 둔 돈세탁업자에 불과했다.
국제 금융제재 탓에 해외 결제가 자유롭지 않던 러시아인 등이 암호화폐를 송금하면 구그닌은 그 돈을 받아 다수의 암호화폐 지갑과 미국 내 계좌 등을 복잡하게 거치면서 자금의 출처를 불명확하게 했다.
돈세탁이 완료된 자금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미국 달러화나 다른 법정화폐의 모습을 갖췄다. 이런 돈은 고객이 지정한 결제처에 지불되는 방식으로 쓰였다.
세탁된 돈이 지불된 업체 중에 한국 기업도 있었다.
작년 3월 구그닌은 러시아 고객의 요구에 따라 홍콩의 한 무역회사를 거쳐 한국 기업의 계좌에 자금을 송금했다. 대가를 지불받은 한국 기업은 홍콩 무역회사와의 계약대로 러시아 모스크바의 모 업체에 장비와 부품을 발송했다. 공개된 공소장에 한국 기업명은 명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배송을 받은 모스크바의 업체는 러시아 국영 원전기업 로사톰의 관계사였다.
구그닌은 유사한 방식으로 러시아 고객이 미국 기업에서 설계한 서버 제품을 사들이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원래대로면 수출 통제 조치 탓에 러시아인이 구매할 수 없는 제품이다.
구그닌의 고객들은 이런 첨단제품 외에도 예술품이나 프랑스산 요트 등을 구매하면서 구그닌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구그닌의 공소장에는 은행 사기, 송금 사기, 제재 회피, 돈세탁, 수출제한 규정 위반 등 22개 범죄사실이 적시됐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은행 사기는 유죄 1건마다 최고 30년, 돈세탁, 송금사기 등은 유죄 1건마다 최고 20년씩 복역 기간이 늘어난다. 22건 범죄사실에 대해 모두 유죄 선고가 내려진다면 종신형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미 법무부는 구그닌에 대해 "암호화폐 기업을 더러운 뒷돈 거래 통로로 변질시켰다"며 "미국 금융 시스템을 활용해 5억 달러 이상을 송금함으로써, 제재 대상인 러시아 은행에 도움을 주고 러시아인들이 민감한 우리 기술을 얻을 수 있게 도왔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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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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