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바둑AI의 블루 스폿에서 느끼는 ‘영혼’
바둑AI 복기 프로그램을 켜면 빈 바둑판에 5개 정도의 착점들이 깜박이며 등장한다. 착점마다 승률과 집 차이가 표시된다. 바둑이 이제 막 시작됐는데, 승률은 백이 흑보다 3% 정도 높게 나온다. AI는 6집 반 덤을 받는 백이 승률은 3%, 집은 0.3집 정도 유리하다고 판단한다.착점 중 하나가 푸른 점으로 깜박인다. 이 ‘블루 스폿’은 ‘최선의 한 수’를 의미한다. AI를 끼고 사는 바둑기사들은 “블루 스폿의 파란 빛에서 짙은 영혼을 느낀다”고 한다. 최선을 찾는 바둑기사에게 블루 스폿은 아름다움 그 자체다.
블루 스폿을 따라 흑과 백을 번갈아 두어본다. 처음엔 이해되는 듯했으나, 바둑은 점차 알 수 없는 길로 접어든다. 드디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딴 세상으로 왔다. 블루 스폿만 따라왔는데 이렇게 된다. 탄식하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내 실력, 내 감각으로 이해되는 세상으로 돌아간다. 바둑AI는 바둑의 신이다. 신진서 9단은 AI를 가리켜 “스승이자 친구이며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했다. AI와 살면서 그 까마득함에 절대 좌절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세월의 흐름을 깜박할 때가 있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컴퓨터 바둑이 시작됐을 때가 생각난다. 컴퓨터의 실력을 키워 인간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컴퓨터의 실력이 조금씩 늘었어도 인간보다 한참 하수였다. 인간 고수들은 “컴퓨터가 제법 잘 둔다”며 어린아이 머리 쓰다듬듯 대견해 했다.
구글 딥마인드가 돌연 알파고를 들고 와 이세돌 9단과 대결한 게 2016년. 바둑 동네는 ‘컴퓨터 실력이 늘어야 얼마나 늘었을까’ 했지만, 과학은 차근차근 변하는 게 아니었다. 전혀 다른 차원을 보여준 AI의 위력 앞에 인간 고수들은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AI끼리 바둑을 두면 어떤 모습이 펼쳐질까. 한마디로 광적인 수순이 이어진다. 불처럼 화급한 장면에서도 손을 빼 딴 곳을 둔다.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는 숨 가쁜 수순이 이어진다. 왜 바둑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일까.
‘나비효과’란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된다. ‘나비의 날갯짓이 다른 대륙에 태풍을 만들어낸다’는 말은 인간의 분석이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기후 변화에 대한 얘기다. 바둑판에도 나비효과가 존재한다. 지금의 한 수가 나비의 날갯짓이고 그 한 수가 초래할 최종적인 결과가 태풍, 즉 패배다. 인간 고수들은 그걸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AI는 할 수 있다.
AI는 무시무시하게 빠르고 정확한 작업을 통해 ‘반집 진다’고 계산해낸다. 그렇다면 이 길을 가선 안 된다. 손을 빼 다른 길을 찾아낸다. 그건 상대 AI도 마찬가지다. 진다는 계산이 나오면 길을 바꾼다. AI끼리의 바둑은 그래서 해독 불가 암호문이 된다. 고수들 말고는 감상 자체가 어렵다. AI 세계대회는 가끔 열리지만 바둑TV 같은 데서도 AI끼리의 바둑은 해설하지 않는다.
바둑기사들은 이런 AI와 같이 살아야 한다. AI의 비밀을 읽어내는 힘이 절실하다. AI가 계산으로 만드는 수순을 인간은 기억력과 감각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인간은 또 하나의 적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AI는 마음이 없다. 자신이 바둑 두는 줄도 모른다. 바둑 두는 우리는 그를 바둑의 신처럼 믿고 따른다. 바둑판 361로는 상대적으로 좁아서 신이 되기 쉽다는 게 드러났다.
바둑판을 제패한 AI가 바둑판 밖에서도 신이 될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허사비스(구글 딥마인드 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통제 안 되는 AI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 위험이 일자리가 사라지는 위험보다 크다고 했다. 바둑 AI와 더불어 살며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도 AI에 악마가 깃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이 알 수 없는 세상이 더욱 깜깜해진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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