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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호 칼럼] 다양성 시대의 획일적 국정운영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국가AI위원회 부위원장
일본 도쿄 근교 츠쿠바시의 전철은 도쿄 아키하바라가 종착역이다. 이 역에는 일반 에스컬레이터도 있지만 더 빠르게 움직이는 급행 에스컬레이터도 있다. 그리고 한 줄에는 승객들이 서 있지만 다른 한 줄에는 바쁜 사람이 걸어서 올라갈 수 있다. 우리나라 에스컬레이터는 한 가지 속도이고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걷지 말라고 안내한다. 획일성이 다양성을 압도한다.

이제 다양성의 시대가 도래했다. 20세기는 획일적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였다. 하지만 MIT의 마이클 피오르 교수와 찰스 세이블 교수가 『두 번째 산업분수령 (The Second Industrial Divide)』에서 간파한 것처럼 21세기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가 되었다. 컴퓨터의 발전으로 생산의 다양성이 가능해져서 개성 있는 다양한 삶을 즐길 수 있다.

21세기는 다품종 소량 생산 시대
AI 발달로 개인·기업 다양성 확대
분권형 자치로 국가경쟁력 높여야
획일성 벗어날 7공화국 개헌 필요

글로벌화로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며 생활한다. 우리나라도 유학생, 외국인 근로자, 다문화 가정 등 인종의 다양성이 확대되었다. 가족 개념도 혈연관계를 넘어 재혼가정, 동성가족, 반려견과 같은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나타난다. 미국에서는 남녀 양성(sex)을 넘어서 12개나 되는 다양한 사회적 성(gender)을 주장하기도 한다.

AI 시대에 개인은 기존 사회공동체를 벗어나 다양한 개인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대량생산체제 규모경제의 효율성으로 발전된 소수의 대기업, 대도시, 대형 마트, 공영방송 등이 다수의 스타트 업, 스마트 도시, 온라인 쇼핑, 개인 유튜브 채널 등 새로운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회장이 세계 최대 IT(정보기술)·가전 전시회 'CES 2025'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월 6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도요타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AI 시대에 원격교육, 원격의료 등이 활성화되면 이삼만 명 정도의 다양한 스마트 도시가 대도시보다 훨씬 매력적인 주거공간이 될 것이다. 2020년 라스베이거스 CES에서 토요타가 삼만명 정도의 미래첨단도시 우븐시티(Wooven City) 설립 계획을 발표한 후 올해 CES에서는 내년에 AI가 내재화된 우븐시티를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인 정치학 교수 친구가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를 보고 5년마다 왕을 뽑는 선거 축제를 벌인다고 꼬집었다. 일본처럼 지방분권이 활성화된 나라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고려말 지방 호족세력을 몰아내고 중앙집권의 강력한 왕권을 구축한 조선의 왕들은 흉년이 들면 백성들처럼 거친 음식을 먹고, 백성의 억울한 사연은 신문고로 풀어주어야 하는 부모와 같은 존재였다. 이 유산이 대통령제인 지금도 남아있어 아직도 대통령을 국부, 국모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민주 선거에 의해 선출된 유권자들의 대리인이자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대통령 명령 하나면 중앙정부가 국민의 일상 모든 면에 개입하는 시대는 청산되어야 한다. 국가가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증원하도록 각 대학에 지시하고, 사립대학 등록금을 16년 동안 동결하고, 대학입시를 수능이라는 국가시험 하나로 규제하는 일들은 AI 시대에 심각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국가는 왜 획일적 정책으로 다양성을 규제하는가? 선거 때마다 영남과 호남은 늘 상반된 입장을 보이는데 왜 한쪽 편의 절대적 지지를 얻어 당선된 대통령은 일방적인 국정운영을 하나? 영남과 호남이 서로 다른 정치 사회적 가치를 바탕으로 서로 다르게 지역을 운영하면 안 되나?

몇 년 전 세계총장회의 사석에서 스위스 독일계 지역인 취리히대학 총장이 프랑스계 지역인 제네바대학 총장을 비웃던 것이 생각난다. 당시 제네바 지역에서 인권 보호 명목으로 이동통신 5G 도입 금지를 주민투표로 통과시킨 것을 비난한 것이다. 스위스는 주민투표로 지역별로 상이한 정책을 채택할 수 있다.

다양성 시대에 국가가 52시간제, 반값등록금, 양도세, 법인세, 소득세, 상속세 등 각종 세제를 획일적으로 정하는 것이 늘 옳은 것만은 아니다. 기업의 특성에 따라 52시간 근무제를 지역별로 상이하게 적용할 수 있고, 교육자치제를 통해 자립형 사립고 등 다양한 형태의 중고교를 유치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의 획일적 국정운영이 아니라 지방정부의 다양한 특성에 따라 거주이전과 기업유치의 선택권이 자유롭게 주어지고 지방정부가 행·재정 자율권을 갖고 정책의 다양성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2차 비상경제점검태스크포스(TF) 회의에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새 정부도 국가 예산의 기재부 전횡을 문제 삼아 대통령실 안에 수석급 재정기획보좌관을 신설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또한 국가가 모든 예산을 독점하여 관리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이제는 국세와 지방세의 조정을 통해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지방에 교부금을 주면서 통제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외교·안보는 통일된 국정운영이 필요하지만, 경제사회는 다양한 분권형 운영이 가능해야 미래 경쟁력이 있다.

대선 기간 모든 후보는 개헌을 통해 제7공화국을 열 것을 약속했다. 개헌에서 대통령 4년 중임제 논의는 지엽적 문제에 불과하다. 이제 대통령의 행정명령이나 중앙정부의 획일적 국정운영에서 벗어나 지방정부의 다양한 정책을 개인이나 기업이 자유롭게 선택하며 살 수 있는 제7공화국의 헌법이 되어야 한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국가AI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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