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 솟구친다" 토박이도 최고 꼽는 섬, 통영 연화도 가보니
진우석의 Wild Korea 〈26〉 통영 연화도 트레킹

통영 서호시장에서 백반 먹는 즐거움

통영은 바다로 열린 땅이다. 시내에서 바라보는 바다도 아름답지만, 섬 여행을 해야 통영의 진가가 드러난다. 통영 앞바다에는 한산도, 연대도, 비진도, 매물도, 욕지도 등 보석 같은 섬들이 흩뿌려있다. 그중 연화도는 덜 유명하지만, 토박이들이 통영 최고로 꼽는 섬이다.
1시간쯤 뱃길을 달려 연화항에 내렸다. 연화도는 둘레 12㎞로 크지도 작지도 않다. 최고 절경은 섬 동남쪽 끝에 꼬리처럼 달린 용머리다. 용머리는 네 개 바위섬과 해안 절벽을 통칭한다. 섬에서는 ‘네 바위섬’이라 불렀는데, 통영 8경을 선정하면서 ‘용머리’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옛 이름은 생김새를 잘 알 수 있고, 새 이름은 헤엄치는 용을 상상하게 한다.

용머리 전망대 가는 길에 놓인 출렁다리가 섬과 섬을 이어준다. 다리 위에 서면 입이 쩍 벌어진다. 거칠면서 눈부시게 흰 절벽이 웅장하게 펼쳐지는데, 바위들 생김새가 가히 만물상이라 부를만하다. 특히 바다로 나간 지아비를 기다리는 듯한 망부석이 눈길을 붙잡는다.

네 개의 섬과 해안 절벽 어우러진 용머리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하염없이 용머리를 바라보는 이가 있어 그 옆에 슬쩍 앉아 해초 유부초밥을 꺼내 먹었다. 밥을 먹는 건지, 풍경에 취하는 건지. 그에게 슬쩍 말을 붙여보니 통영 토박이다. “잘 오셨습니더. 통영 여러 섬 중에 연화도가 최고 아임니꺼.”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헤어져 보덕암을 찾아간다. 눈은 멀고 발은 빠른 법. 저 멀리 있던 보덕암에 1시간도 채 안 돼 닿았다. 보덕암 삼거리에서 암자로 내려가는 길에는 수국 군락이 가로수처럼 자리한다. 6월 초면 성급한 수국이 좀 필 것 같았는데, 아직은 깜깜무소식이다. 대체로 6월 15일이 지나야 비로소 무리로 피어난다고 한다. 화장실 창문에서 본 용머리가 꽃처럼 보인다. 보덕암은 용머리가 가장 잘 보이는 장소에 자리 잡았다. 암자 마당에서 용머리를 바라보니 바다로 헤엄쳐 나가려 용 한 마리가 자맥질하고 있다.
보덕암에서 연화봉 정상 가는 길에 토굴이 있다. 이곳에 연화도인과 사명대사가 수도하는 모습의 동상이 있다. 연화도인은 조선 연산군 때 불교 탄압을 피해, 비구니 셋과 함께 이곳에 와 도를 닦았다고 전해진다. 연화도인은 입적하기 전에 자신을 받아준 주민을 위해 둥근 돌에 ‘富(부) 吉(길) 財(재)’란 글을 새겼다고 한다. 이 돌을 찾기는 쉽지 않다. 연화항에 있는 안내판에서 이 돌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연화도인과 사명대사의 수도처

연화도에 다녀온 후 이상하게 몸이 생생했다. 장시간 운전에 녹초가 될 만도 했지만, 멀쩡했다. 아마도 용머리의 기운이 나도 모르게 스며온 것 같다. 연화도에서 도인들이 수도한 이유를 몸소 느낀 셈이다. 토굴 위가 연화봉 정상이다. 여기에 우람한 석조 아미타대불이 세워져 있다. 정상 비석 뒤로 용머리의 장관이 유감없이 펼쳐진다. 호연지기가 절로 나는 장쾌한 풍경이다.
하산은 보덕암 쪽 말고, 서쪽 능선을 타는 게 좋다. 새들이 요란하게 지저귀는 풍성한 숲길을 지나면 연화항에 닿는다. 시간 여유가 되면, 보행교로 연결된 우도로 건너가 구멍섬에 다녀올 수 있다. 연화항 용머리식당에서 전갱이 물회를 시켰다. 햇살 부서지는 바다를 보면서 감칠맛 나는 자연산 전갱이를 맛보는 게 일품이다. 아직 회가 많이 남았는데 배가 시끄럽게 경적을 울리며 들어온다.
여행정보


시인이 되다만 여행작가. 학창시절 지리산 종주하고 산에 빠졌다. 등산잡지 기자를 거쳐 여행작가로 25년쯤 살며 지구 반 바퀴쯤(2만㎞)을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캠프 사이트에서 자는 게 꿈이다. 『대한민국 트레킹 가이드』 『해외 트레킹 바이블』 등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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