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아침] (281) 영양곡(迎陽曲)

작자 미상
녹양(綠楊)은 자는 듯 깬 듯 산마루에 해 돋는다
설멋진 농가의 아침 논 매고 나니
눈앞에 만경(萬頃) 옥야(沃野)는 나날이 달라가네
-악부(樂府) 고대본(高大本)
조상들의 피땀 위에 우리가 있다
꼭 요즘의 농촌 풍경을 읊은 전원시다. 밤이 짧아져 녹색 버들은 자는 듯 깬 듯 어느덧 산마루에 해가 돋아오는 아침이다. 농부는 아직 어우러지지 아니한 논을 아침에 매었다.
경(頃)은 면적의 단위로 밭 100이랑이다. 따라서 만경이란 아주 넓은 논밭을 이르는 표현이다. 고시조로는 드물게 ‘해를 맞는 노래’란 뜻의 제목이 붙어 있다.
이 시조를 보면 당시의 농촌이 평화롭고 목가적일 듯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구례 유씨가에서 189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3대에 걸쳐 쓴 농가 일기를 보면 하늘에만 의존했던 농사가 얼마나 처절했던가를 잘 알 수 있다. 50년에 이르는 기간에 재해가 없었던 해는 9년에 불과하다. 주민들이 물싸움을 벌이자 군청과 경찰이 나서서 시간대별로 물을 나누어 쓰게 한다. 군수가 기우제를 지내는 기록도 있다. 우리가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 수십 년에 불과하니 조상들의 피땀 위에 오늘의 우리가 편히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유자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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