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빛 쐈을 뿐인데…‘미지의 내면’ 나타났다
![전시장 3층을 막아 어두운 복도 끝에 제임스 터렐의 ‘웨지워크’ 단 한 점을 설치했다. 빗면(Wedge)에 색색의 빛 사각형을 만들어 보색 대비로 공간감을 창출한다. [사진 페이스갤러리]](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6/12/c827f9c9-d234-4a8f-8f25-558381f1e2e2.jpg)
‘빛의 마술사’ 제임스 터렐(82)이 돌아왔다. 2008년 토탈미술관·쉼박물관 등 세 곳에서 연 전시 후 서울서 17년 만이다. 페이스갤러리 전관에서 14일 개막하는 ‘귀환(The Return)’이다. 모서리에 색색의 빛을 투사해 빛의 벽을 중첩하는 ‘웨지워크’, 일상 공간에서 빛을 체험하게 하는 LED 작업 ‘글래스워크(Glassworks)’ 등 5점의 설치, 판화와 홀로그램 작업, 그리고 미국 애리조나의 사화산에서 50년 가까이 진행 중인 ‘로든 분화구’와 관련된 사진 등 25점이 나왔다.

그는 “파랑과 노랑을 섞으면 녹색이 되지만, 파란빛과 노란빛을 섞으면 흰빛이 나온다. 소리라면 음역을 정확히 인식하는 절대음감의 사람들이 있겠지만, 색상은 어떤 맥락에 있는 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화이트아웃 상태의 조종사처럼, 지평선이 사라진 세계에서 방향 감각은 상실되지만, 오히려 새로운 감각의 지평을 열 수 있다”면서다.
터렐은 조종사인 아버지를 따라 16세에 조종사 면허를 땄다. 애리조나 사막 위를 비행하던 중 사화산인 로든 분화구를 발견, 평생 작업의 중심으로 삼았다. 화산 분화구 내 24개 관측 공간과 6개의 터널을 지어 맨눈으로 천체를 관측하고 빛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60년 넘게 빛을 매체이자 주제로 삼았지만, 이제는 빛이 넘쳐나는 세상. “내가 있는 애리조나의 플래그스태프엔 천문학 관측소가 많은데, 여기마저도 과도한 조명으로 천문 관측이 어려운 지경이 됐다”고 그는 말했다. 이어 “당신 작품을 소장함으로써 내가 갖게 되는 건 뭐냐고 묻는 컬렉터들에게는 ‘이곳을 지나가는 빛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에 우주적 경이를 더한다. 초기작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s)는 건물 천장을 열어 자기만의 하늘을 볼 수 있게 한 작품이다. 하늘의 한 부분을 분리하면 구멍 주변의 빛에 따라 색을 바꿀 수 있다. 우리가 본다고 여기는 것의 실체는, 실은 우리 마음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1978년 뉴욕 MoMA PS1 분관에서 시작한 그의 첫 공공 스카이스페이스의 제목은 ‘만남(Meeting, 1980-86/2016)’. 이후 원주 뮤지엄 산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 100개 가까운 스카이스페이스를 제작했다. 올해 그는 역대 최대 규모의 스카이스페이스를 덴마크 오르후스에 있는 아로스(ARoS)에 개관한다.
부인은 화가 이경림 씨로, 터렐은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1961년 겨울 라오스서 의료봉사요원으로 복무하다 중상을 입고 서울로 후송돼 군 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다. 지금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다. “여러분께 한 조각 빛을 전하고 싶다”는 그의 마지막 인사말은 이랬다. “저는 한갓 예술가이며, 예술이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아닙니다. 전 그저 제 일을 할 뿐이죠.” 전시는 9월 27일까지. 무료이지만 예약제로 운영된다. 이미 두 달 치 주말 예약이 다 찼다.
권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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