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현의 시선] 트럼프와 함께 춤을, 아니 골프를


이 대통령, 골프 약속 제안 눈길
트럼프 원조 골프 친구는 아베
“나라 어려운 상황 막는 데 기여”
‘공짜 점심’은 없지만 성사되길
트럼프 원조 골프 친구는 아베
“나라 어려운 상황 막는 데 기여”
‘공짜 점심’은 없지만 성사되길
2024년 출간된 아베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방문 목적 중 하나가 아예 골프 약속을 잡는 것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2017년 2월 첫 워싱턴 정상회담 후 두 정상은 에어포스 원을 함께 타고 플로리다로 날아가 골프를 쳤다. 트럼프는 워싱턴 날씨가 영하라서 도저히 골프를 칠 수 없으니 플로리다에 있는 자기 별장 근처에서 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아베는 1번 홀 티샷의 순간을 생애에서 가장 긴장했던 순간이었다고, 91타를 쳐 트럼프에게 졌지만 생애 최고의 라운드였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아베의 말이 인상적이다. “전화 통화를 하면 트럼프는 아무렇게나 1시간 동안 얘기합니다. 길면 1시간 반도요. 중간에 이쪽이 지칠 정도예요.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본론은 전반 15분 만에 끝나고 나머지 70~80%는 골프 이야기나 다른 나라 정상의 비판 등이죠.”
물론 공짜 점심은 없었다. 아베는 도요타 자동차의 대규모 미국 투자, 미국산 옥수수 대량 수입 등 트럼프의 수많은 요청을 수용해야 했다. 또 뉴욕타임스(NYT) 등 해외 언론으로부터 ‘트럼프에게 아부만 하는 아베는 한심하다’는 등 저자세 외교에 대해 수많은 비판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아베는 “일본 총리가 최대 동맹국 지도자와 친하게 지내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담담하게 대응했다. “일본이 상식을 넘어서는 트럼프의 표적에서 벗어나 나라 전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것을 막는 데 기여했다”라고 언급한 대목에선 트럼프와의 골프 외교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접대 외교였다는 점도 토로했다. 아베의 골프 외교는 트럼프 1기 일본의 국익을 지켰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2기 행정부 들어 트럼프와 골프를 친 외국 정상은 지난 3월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 정도다. 이후 스투브 대통령은 일약 정상들의 ‘인싸’가 됐다. 최근 백악관을 찾은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등을 포함해 수많은 정상이 ‘아베 효과’를 노리면서 골프 로비를 했지만, 아직 성사됐다는 소식은 없다.
이런 트럼프와 골프 버디 되기에 이 대통령이 도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 때, 아니 그 이후에라도 성사된다면 트럼프 2기 한국의 국익을 지킬 수 있는 실용외교에 청신호가 켜질 것이다. 아베는 회고록에서 이런 말도 했다. “외교의 기본은 현실주의입니다.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외교는 아무도 따라오지 않습니다. 세계 각국은 얼마나 국익을 확보할 것인가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습니다. 경직된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으면 결국 나라는 쇠퇴하게 됩니다.” 갓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참고했으면 좋겠다.
사족이지만, 아베의 골프 외교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힌트를 얻었을 수 있다.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한국 정상으론 처음으로 캠프 데이비드를 방문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골프 카트에 태우고 직접 운전해 캠프 데이비드 경내를 둘러봤다. 당시 빡빡한 일정 때문에 골프를 치진 않았지만, 퇴임 후 두 정상은 사적으로 만나 골프를 치는 사이가 됐다. 그러고 보니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기조도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였다.
차세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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