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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버터] "형편 되면 기부하겠다고요? 그 마음으론 평생 못 합니다"

일상의 기부자들 오성삼씨 인터뷰

오성삼 전 교수는 “인생의 고비마다 도움을 받았는데 평생 갚으며 살 것”이라고 했다. 김용재 기자
오성삼(71) 전 건국대 교수는 인생의 고비마다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는 두 동생과 함께 보육원에서 지냈다. 며칠 뒤 선생님이 바다 건너 미국의 월드비전 후원자와 연결됐다고 했다. 공부를 곧잘 했지만 먹고 사는 일이 급했다. 스무 살,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대학에 합격했을 때도 월드비전에서 입학금을 지원받아 수업에 나갈 수 있었다.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마지막 학기 등록금도 후원금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지난달 29일 인천 송도 자택에서 마주한 오 전 교수는 “이대로 주저앉을 위기 상황이 닥칠 때마다 어딘가에서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다”며 “그러다 마음속에 결심 하나가 생기더라”고 했다. “받았으니 돌려줘야 한다.”


Q : 당시에 어떻게 미국 유학까지 하셨나요.

A : “플로리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했습니다. 당시 대학 조교를 하면 등록금을 면제받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외국인 조교들이 많았어요. 그러다 갑자기 주 정부 차원에서 그 혜택을 없앴어요. 외국인에게 혜택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요. 마지막 학기를 앞둔 시기였습니다.”


Q : 한 학기 등록금이 얼마였나요.

A : “1000달러. 1970년대에는 환율이 낮았으니까 80만원 정도 했어요. 당시에는 누군가에게 빌려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엄청 큰돈이었어요.”


Q : 결과적으로는 유학을 무사히 마치셨는데요.

A : “월드비전 미국본부에 편지를 썼어요.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어릴 때 지원을 받은 후원아동이고 미국에 유학까지 왔는데 마지막 학기 등록을 못 하고 있다고요. 1000달러를 빌려주면 한국에서 교수가 돼서 이자를 충분히 쳐서 갚겠다고 했어요.”


Q : 답장이 왔나요.

A : “등록 마감 며칠 전에 등기우편이 왔어요. 그 안에 1000달러짜리 수표가 들어있었어요. 그렇게 박사학위를 받았고, 마침 건국대에 채용 공고가 나서 교수가 됐어요.”


Q : 이자를 충분히 쳐서 갚으셨나요.

A : “등기로 온 수표를 복사해서 늘 서랍에 뒀어요. 갚아야 하니까요. 한국에서 돈을 모아서 월드비전에 전화해서 7배로 갚았어요. 2000달러는 월드비전본부로 보냈고, 5000달러는 한국월드비전에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 하는 학생들을 도와달라고요.”


Q : 정기후원도 하셨다고요.

A : “한동안 잊고 지냈다가 IMF가 터졌죠. 그때부터 아동후원을 시작했어요. 3명으로 시작해서 6명, 9명, 12명 이런 식으로 조금씩 늘렸어요. 월급이 오르니까요.”


Q : 몇 명까지 후원하셨나요.

A : “60명 정도 된 거로 기억이 나네요. 퇴직하면 정기후원도 중단하려고 했는데, 마침 송도고등학교에서 교장을 모집하는 거예요. 퇴직일이 2012년 8월 30일인데, 또 마침 교장 임기는 9월 1일부터 시작이더라고요. 정말 신기하죠. 그렇게 남들 은퇴할 나이에 월급을 받게 됐으니 정기기부를 크게 늘렸던 겁니다.”


Q : 지금까지 누적 기부금이 상당하겠습니다.

A : “세어보지 않아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월드비전에서 연락이 온 적이 있어요. 그동안 기부한 금액이 1억원을 넘었다고요. 지금은 완전히 은퇴하고 많이 줄였습니다.”


Q : 줄이더라도 끊지는 않으셨네요.

A : “후원을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요. 그게 안 되겠더라고요. 세상을 떠나는 날 후원이 종료되지 않을까요. 인위적으로 결정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Q : 후원받던 소년이 후원하는 어른으로 성장한 거네요.

A : “보육원에서 지낼 때는 잘 몰랐어요. 미국에서 편지와 함께 사진이 오갔고, 조그마한 선물을 받기도 했어요. 그런데 훗날 미국에서 유학할 때 한번 찾아간 적이 있어요. 덕분에 잘 컸다고요.”


Q : 기억이 나십니까.

A : “당시 시카고에서 미시간으로 기차를 타고 갔어요. 역에 내리는데 후원자 부부와 딸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동양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 금방 알아봤겠죠. 미시간주에 있는 그랜드래피즈라는 마을이었는데, 하루 그 집에 머물면서 이야기했던 기억이 아련해요.”


Q : 기부가 인생을 바꾼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A : “그렇지요. 형편이 좀 나아지면, 이 고비만 넘기면 기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마음으로는 끝내 기부할 수가 없어요. 누구를 돕는다는 건 지금 자기 형편보다 더 못한 사람들을 바라봐야 가능한 거예요. 지난 시절을 돌이켜봤을 때 형편 따지면서 기부하려고 했으면 못 했을 겁니다. 지금 기부를 고민한다면 형편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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